톨스토이 단편선 (L.N.톨스토이, 박형규 옮김, 인디북)


톨스토이가 민간설화, 종교전설, 구전된 이야기 등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만든 도덕적, 종교적인 우화들을 모아놓은 것이 이 책 <톨스토이 단편선>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톨스토이의 짧은 작품들은 모두 교훈을 전달하려는 목적이 뚜렷하고, 그 교훈 또한 매우 종교적이며 비세속적인 경우가 많다.

<바보 이반>이라는 작품엔 거의 무정부 상태와도 같은 바보 이반의 나라가 등장하는데, 이곳은 군대를 이용한 전쟁도 일어날 수가 없고 상인들이 자본을 무기로 백성을 착취할 수도 없는 매우 비현실적인 곳이다. 이 국가에서 유일하게 칭송되는 것은 노동으로, 왕인 이반조차 정치는 뒷전이고 땅을 일구는 일에만 전념하고 있다. 손에 흙이 묻지 않는 것은 진정한 노동이 아니며, 머리로 세상을 좌지우지하려는 사람들은 이 나라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반의 나라의 중요한 관습은 ‘손에 굳은살이 박인 자는 식탁에 앉게’ 되고, ‘굳은살이 박이지 않은 자는 먹다 남은 찌꺼기를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톨스토이는 거의 자급자족과도 같은 노동 중심의 생활이 민중들에게 가장 가치 있는 것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또한 정치체계가 전무한 이 나라는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말년에 모든 삶을 뒤로 하고 방랑을 시작했던 톨스토이의 의지와도 연결되는 듯하다.

 


1886에 쓰여졌다는(작품해설참조)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는 발 닿는 대로 땅을 가질 수 있게 된 주인공 바흠이 지나친 욕심을 부리다가 결국 죽게 되는 이야기다. 점점 더 큰 땅을 소유하고 싶어하던 주인공은, 우습게도 제목에 대한 대답을 의미하듯 죽을 때 묻힐 약 2미터 남짓의 땅만을 가지고 간 셈이다. 재물에의 집착이 한 개인에게 있어 얼마나 덧없는가를 간단명료하게 보여준다. 이렇게 그 주제가 재물과 관련된 톨스토이의 단편들은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았던 그의 사상을 직접적으로 담고 있기도 하다.

이미 계몽의 시대는 지났고, 관점에 따라 의미가 다르겠으나 더 이상 ‘무지’한 국민들은 없다고 봐도 좋을 지금, 톨스토이의 이 단편들이 우리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과연 무엇일까. 짧은 이야기들을 읽어가는 동안 매우 종교적인 그의 교훈의 말들이 귓전에 한껏 다가왔다가 서늘한 냉소에 흩어지는 과정들이 차마 없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더구나 무욕(無慾)과 사랑이라는 테마가 그 중심에서 울리고 있는 이 이야기들을 톨스토이라는 거대한 이름 안에 담겨 있다는 이유 하나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의무는 없으니까.

그러나 이 <톨스토이 단편선>을 읽는다는 것은, 끝없는 욕망과 타인에 대한 무관심한 태도로 꽉 찬 이 제어할 수 없는 생활 안에서 가끔은 브레이크를 걸어줄 어떤 메시지를 발견하는 것과 같다. 현실과 절대 타협하지 않고 종교적이기까지 한 톨스토이의 계몽의 메시지는 일직선으로 된 길 너머의 보이지도 않는 인생의 도착지를 향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다가도 문득 지금 밟고 있는 길이 제대로 된 길인지 의문이 들게 만든다.

하지만 이것이 그 동안 지나쳐온 주변사람들과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무관심의 재고(再考)인지, 아니면 톨스토이의 단편들의 힘을 빌려 내 자신을 위로하기 시작한 것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세몬이나 <두 노인>의 예리세이 노인처럼 사람의 삶은 타인을 향한 ‘사랑’으로 살 때 가장 의미 있을 것이 분명하지만 냉소와 무관심에 찌든 이 마음이 풀어지는 일은 아직도 멀어 보인다. 다만 책을 읽는 동안 인생의 갈 길을 잠시 멈추고 잠깐이나마 주변을 돌아보게 되었다는 사실 하나가 위로가 될 뿐이랄까. <톨스토이 단편선>은 그렇게 잠시 머물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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