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레이드 (요시다 슈이치)



좁아터진 아파트 속 다섯 젊은이. 스물 한 살의 대학생 스기모토 요스케는 선배의 여자를 좋아하게 되어버렸다. 특별한 일이 없는 23세의 청춘, 오코우치 고토미는 어느새 TV속 스타가 되어버린 남자친구를 하릴없이 기다리는 것이 일과다. 그보다 한 살 많은 소우마 미라이는 청춘의 비밀을 술잔 속에서 발견하려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년을 집안에 끌어들인다. 그 미지의 소년은 알고 보니 밤마다 몸을 파는 나름 장사꾼. 영화사에 근무하는 스물 여덟의 남자 이하라 나오키는 애초에 애인과 시작한 이 동거생활이 어떻게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청춘이란 한 단계 성숙해졌다고 믿고 싶을 때마다 결국 제자리라는 것을 깨닫는 시기가 아닐까. 나중에야 그때를 추억하면서 얼마간의 골치 아픈 순간들을 거치며 인생의 ‘경험치’를 획득할 수 있었다고 자위할 순 있겠지만. 10대 후반에서 20대 후반에 이르는 이 황금의 10년간은 어떻게 보면 가장 찬란히 빛나는 시기이자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혼돈의 시간이다. 더딘 성장, 불투명한 미래, 사람과 사람 사이의 허망한 관계. 요시다 슈이치의 <퍼레이드>속, 일본의 어느 좁은 아파트에서 동거중인 이 다섯 명의 청춘도 그다지 다르지 않아 보인다. 아니, 오히려 이 어지러운 10년간을 애써 축약해 놓은 듯하다. 자기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과 타인을 향한 자기기만의 연속. <퍼레이드>의 주인공들은 그 누구도 확실한 자신의 모습을 갖지 못한 채 자기자신에게 줄기차게 묻는다. 과연 너는 누구니?

 


하지만 이런 정체를 알 수 없는 청춘의 시기를 그려내면서도 <퍼레이드>의 대목대목은 작가의 넘치는 재치로 가득해 결코 우울하지 않다. 다섯 명의 젊은이가 보여주는 이 대책 없는 동거생활은 독자로 하여금 웃음을 짓게 한다. 마치 우리자신이 나이 든 후 스스로의 이 시절을 떠올렸을 때, 어딘가 모르게 유치하거나 어리석은 시기였다고 느낄 그 감정을 상상하는 것처럼. 총 다섯 부분으로 나뉘어진 소설은 각 챕터당 다섯 명의 동거인중 하나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이 서로 다른 입을 통해 묘사됨을 읽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요시다 슈이치는 작고 작은 사건들 속에 순간적인 반전이나, 같은 사건을 둘러싸고 발생하는 등장인물들의 어처구니 없는 오해들을 적절히 삽입함으로써 이 대책 없는 젊은이들의 이야기가 결코 비극으로 곤두박질 치지 않게 돕는다.

그러나 역시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 <퍼레이드>는 간헐적인 복선으로 작품의 분위기와 사뭇 다른 예상외의 결말로 가는 길을 안내한다. 책을 다 덮고 난 후 떠오른 단 하나의 단어는 ‘분열’. 불투명한 자아의 분실, 타인과의 관계의 실종, 안개 속의 미래, 이 모든 것들에 갇혀버린 청춘의 탈출구는 결국 자아를 조각조각 내어버리는 것뿐. 요시다 슈이치의 <퍼레이드>는 독자를 웃음짓게 만드는 작가의 그 솜씨를 맘껏 휘두르다 결국엔 씁쓸한 입맛을 남겨버린다. 요것 참 거시기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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