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크백 마운틴 / Brokeback Mountain (2005)

영화의 제목이자 와이오밍 주의 산 이름인 ‘브로크백 마운틴’은 이 영화의 또 하나의 주인공이다. 영화의 러닝타임 중 처음 3분의 1은 산이 스스로를 주인공들의 잊을 수 없는 그리움의 공간으로 만들어가는데 소요된다.

푸르디 푸른 하늘, 흐르는 계곡물, 포근한 양떼, 두드러진 녹색의 산림 등, 잭(제이크 질렌홀)과 에니스(히스 레저)의 뒤쪽으로 산의 풍경이 하나씩 펼쳐진다. 그 모습은 마치 관객의 기억 속에 이 장소가 아련하게 각인되길 바라는 하나의 희망처럼 느껴진다. 카메라가 주인공들과 산에 드리운 시선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두 사람이 양떼를 지키는 일로 고용된 일개 노동자가 아닌 것 같은 착각마저도 들 정도다. 꼭 그 어떤 고민 없이 찾아온 듯한 이 공간. 오로지 자연과 마주하기 위해서, 혹은 두 사람의 운명적인 만남만을 기다렸던 것처럼.

 


그리고 영화음악. 배경음악의 어쿠스틱 기타소리가 두 남자를 부드럽게 감싸는 동안 ‘브로크백’은 그들을 서로에게 소개한다. 둘은 이내 열정에 사로잡히고 이렇게 시작된 인연은 그들의 평생에 걸쳐 이어진다. 잭과 에니스의 그 모든 기쁨과 슬픔의 시작점이 된 이 공간이 영화의 제목임이 자연스럽다.

운명적 만남이 사회의 금기와 충돌할 때 어떤 이는 그 벽을 부숴나가고 다른 이는 돌아서 체념한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이는 그 따가운 시선으로부터 약간 피해있거나 그 먹먹한 장애물 앞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저 서있는다.

잭과 에니스는 아마도 거기쯤 서있을 것이다. 이들은 주위의 시선을 피할 가짜 가정을 이루며, 결코 드러내지 못할 그리움을 조심스레 간직한 채 살아간다. 힘을 합쳐 장애물을 무너뜨리거나 뒤돌아 시작점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아니, 그러지 못한다. 두 남자는 벽을 뚫기엔 나약한 존재, 감정은 되돌리기엔 이미 강렬해졌다. 다른 누군가 라면 그 산을 원망할지도 모르겠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아련함과 원망이 뒤섞인 애증의 공간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영화는 셋을 하나의 아름다운 추억 속에 묶어둔다. 행복으로 귀결될 순 없지만 포기할 수도 없는 추억. 그 추억 속엔 미국 남부의 저 산이 버티고 있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고통스런 영화다. 주인공들의 만남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은 충분하지만 이들의 사랑이 그 비극의 물감으로 주위를 물들인다. 어쩌면 영화 속 가장 고통스러웠던 이들은 잭과 에니스가 아닐지도 모른다. 쭉 함께 지낼 순 없었어도 진정한 그리움과 애정으로 충만했던 두 사람이다. 사랑하고 사랑 받은 그들이다. 힘들었던 것은 그들의 아내들. 에니스의 아내 알마는 두 사람의 관계를 알면서도 그 고통을 삼켜내야만 했다. 잭의 부인 루린은 남편과 그의 절친한 친구라는 에니스의 관계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기를 포기한 듯 무관심한 표정을 보이지만 사실은 마치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녀의 얼굴에선 그 모든 것에 대한 체념과 이해가 읽힌다.

영화는 두 남자의 그리움을 너무나 소중하게 다룬 나머지 두 여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데엔 다소 소극적이다. 고통을 겪는 이와 주는 이를 두부 자르듯 나눌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잭과 에니스의 가슴 먹먹해지는 인연에 안타까운 시선을 드리우다가도 루린과 알마의 처지에 연민을 느끼게 되는 것도 어쩌면 이 때문일 것이다. 모든 것이 시작된 바로 그곳을 가리키는 영화의 제목은 두 남자의 사랑만을 강조하는 듯하여 더 안쓰럽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 ‘브로크백 마운틴’은 그 둘만을 포근하게 감싸 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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