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 (2009)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생활 안에서라면 쉽게 접할 수 없는 특정 전문분야, 이를테면 도박이라든가 사기꾼들의 세계, 혹은 마약밀매범들의 생리 등을 다룬 영화들의 어려운 점은 바로 그 생소한 세계를 관객들에게 어떻게 펼쳐 보여주느냐는 데에 있다. 그래서 시나리오 작가를 비롯한 제작진들은 그들의 세계를 직접 들여다보고 취재하며 가능한 실감나는 세계를 재현해내려 노력한다. 한마디로 우리가 잘 모를 그것일지라도 그 세계를 결코 허황되지 않게, 그리고 제작진들의 발에 찬 땀이 느껴지도록 만들어내야만 하는 것이다. 마치 진짜일 것만 같은 영화 속 재현이 관객으로 하여금 그 분야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유도한다.

 


앞의 소재들이 <타짜>나 <범죄의 재구성>, <사생결단> 같은 영화들을 통해 관객들에게 무척 흥미롭게 다가갔음을 부정할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물론 초점을 어디에 맞추는지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적어도 이 영화들은 그 판타지와도 같은 다른 세상을 호기심에 찬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만드는 데 성공한 작품들이다. 그 낯선 세계를 잘 짜인 드라마와 효과적인 연출로 잘 포장해낸 영화들이었다는 얘기다.


<작전>은 주식의 세계를 그린 영화다. 그러나 앞의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주식시장의 이야기를 다루지 않는다. 이건 범죄드라마다. 이른바 ‘작전주’를 놓고 벌이는 주식고수들, 또는 큰손들의 싸움을 그린 이야기다. 주식시장이 미리 행동을 맞춘 이들에 의해 마음대로 움직여지고 상상도 못할 큰돈이 오고 간다. 금융감독원을 비롯한 감시자들의 눈에 들키지 않기 위한 조심스러운 진행은 필수. 그래서 시장의 심리를 파악하는 노련한 전문가가 필요하다.

영화에선 선배의 달콤한 속삭임에 맘먹고 투자했다가 실패한 경험으로 주식의 전문가가 되기로 결심한 강현수(박용하)가 등장한다. 그는 5년간의 실전경험으로 주식시장의 판도를 읽을 수 있는 눈을 얻었다. 어떤 것이 ‘작전주’이고 아닌지, 큰 돈을 만들어낸 수 있는지 없는지를 아는 이 청년은 어느 날 눈여겨본 ‘작전주’에 개입해 쏠쏠한 수익을 얻는다. 그런데 이것이 향후 위험천만한 스토리의 시발점이 된다. 현수가 삼킨 돈은 ‘주식깡패’ 황종구(박희순)의 손 안에서 전개되던 ‘작전주’. 돈을 벌 타이밍을 빼앗긴 황종구는 잃은 돈을 되찾으려 강현수를 잡아내지만 그가 주식시장에 대한 높은 안목을 가진 것을 알아채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함께 시작하자 제안한다.


이후 누가 더 많은 콩고물을 얻어내느냐를 두고 서로 물고 물리는 작전이 펼쳐진다. <작전>은 그 사이사이에 감독이 준비해온 여러 요소들을 심어놓는다. 음지의 주식시장을 묘사하는 은어가 그 중 하나. 또 자본주의의 이 상징적인 세계를 특정계급들이 자유자재로 주무르는 방법도 적당히 소개한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작전>의 보이지 않는 밑 기둥이나 마찬가지다. 그것의 중요성은 알지만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는 크게 상관이 없는 것이다. 영화의 중반쯤 동업자들이 서로를 속이려 하는 혼돈의 상황이 펼쳐지는 동안 황종구가 육두문자와 함께 내뱉는 “지금 이게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라는 대사처럼 평소에 주식에 관심이 없던 관객들은 인물들이 서로를 어떻게 등쳐먹고 어떤 방법으로 자신의 몫을 챙기려 하는지 그 디테일에 있어 혼란을 느끼기 쉽다. 허나 이 영화는 그 분야를 몰라도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도록 만들어진 세계다. 더 중요한 문제는 누가 누구를 속이는가, 누가 최후의 승리자가 되는 지이다. ‘작전’의 과정보다 ‘작전’의 대상이 중요한 것이다.

<작전>은 발품의 수고와 이야기의 매력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아나간다. 처음 보는 이 세계가 굉장히 흥미롭게 펼쳐진다. 그도 그럴 것이 모두가 탐내는 ‘대박’의 꿈 아니겠는가. 게다가 잘만 파고들면 도박이나 사기처럼 불법도 아니고 말이다. 눈이 휘둥그래지는 ‘한방’의 현장 앞에 갖가지 설명이 곁들여져 관객의 이해를 돕는다. 주인공이 휘말려 드는 사건은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며 이후가 궁금해진다.

그런데 영화는 중반 이후 다소 지루하다.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전반부에 모두 소모한 듯 캐릭터들의 반목이 일으키는 긴장감이 점차 옅어져 간다. 주인공 현수가 돈의 노예와도 같은 황종구 일행을 앞에 두고 주식을 둘러싼 교훈적이고도 윤리적인 대사들을 내뱉을 때면 그 아쉬움의 정도는 커진다. 마치 금연 캠페인을 에둘러 표현했던 <콘스탄틴>처럼 <작전>은 관객에게 ‘한방의 꿈’을 접고 열심히 살아가라는 고리타분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현실에서 주식에 목매어 일희일비하는 개미주주들에게 꿈 깨라는 한마디를 던지는 것이다. 차라리 솔직히 이렇게 말하는 게 어떨까. 개미들은 아무리 해도 안돼. 우리의 주인공이야말로 예외적인 존재지.


그러나 <작전>은 이 절정의 순간이 조금 아쉽게 그려졌더라도 끝내 호감을 갖게 하는 영화다. 발에 난 땀을 보상받으려는 이 소재주의 영화에 최종적인 호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생소한 소재를 다루는 그 무모함에 가까운 도전과 적어도 영화의 중간까진 힘있게 흘러가는 이야기, 그리고 사이사이 웃음을 놓치지 않으려는 연출 덕분이다. 그리고 또 하나. 감독인 이호재는 이 영화가 데뷔작이다. 나는 또 하나의 인상적인 범죄드라마 <범죄의 재구성>의 최동훈 감독이 그 이후 만들어낸 영화가 무엇이었는지를 기억한다. 감독 이호재 역시 <작전> 이후의 작품이 기대되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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