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ow Patrol - A Hundred Million Suns (2008)

어느 순간부터 과도한 디스토션 기타사운드가 조금 버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니 차라리 음악 자체에 대한 관심이 예전보다 줄어들었음을 인정하는 편이 낫겠다. CD를 구입하는 것도 하나의 앨범을 줄곧 들으며 다니는 것도 어린 시절에 비해서 확실히 드문 일이 되었으니까. 메틀이 점점 멀어지는 것 같은 느낌은 다름이 아니라 그것이 내 주된 감상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리라. 이제는 앨범이 나오는 족족 레코드가게로 찾아가 마주했던 드림 씨어터, 메탈리카, 메가데스 같은 이름이 내 입에서 오르내린 지도 오랜 일 같다. 뭐, 취향은 언제나 돌고 도는 것이니까 언젠가 또 그때의 한 시점으로 회귀할 지도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음악에 한해서라면 좀 무미건조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요즘 한 장의 앨범을 만났다. 90년대 중반 출발해 이미 베테랑 밴드가 된 스노우 패트롤(Snow Patrol)의 음악을 이제서야 제대로 듣게 된 것은 우연이다. 인터넷 서핑 도중 어느 블로그에서 ‘Take Back The City’를 발견한 것이 그 우연의 시작.

 

Snow Patrol
A Hundred Million Suns

01. If There's A Rocket Tie Me To It
02. Crack The Shutters
03. Take Back The City
04. Lifeboats
05. The Golden Floor
06. Please Just Take These Photos From My Hands
07. Set Down Your Glass
08. The Planets Bend Between Us
09. Engines
10. Disaster Button
11. The Lightning Strike


이들이 2008년 내놓은 [A Hundred Million Suns]는 사실 버릴 곡이 하나도 없는 앨범이다. 너무 흔한 수식이지만 이것이 음악을 글로 표현할 때의 제약과 음반에 대한 지금의 솔직한 느낌을 최대한 조합했을 때 나올 수 있는 최적의 묘사다. 앨범의 러닝타임 전체를 놓칠 수 없는 음반. 이제야 알았지만 이번이 벌써 다섯 번째 앨범이란다. 만남이란 참 신기한 것이다. 어떻게 이들을 그 동안 모르고 있다가 이제서야 알았을까.

 


스노우 패트롤의 [A Hundred Million Suns]는 풍부하고 세련된 멜로디가 단순한 곡의 구조와 결합할 때 얼마나 매력적일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 어쿠스틱 기타와 전자 기타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며 맞물리고 개리 라이트바디(Gary Lightbody)의 편안한 목소리가 그 곁을 맴돈다. ‘Take Back The City’나 ‘Please Just Take These Photos From My Hands’ 같은 곡들에선 가볍게 질주하는 모던록의 상큼한 매력이 드러난다. 동시에 이들의 음악이 귀로부터 떨어져나가지 않는 이유가 그 단순한 곡의 진행에 있음을 상기시킨다.

Snow Patrol ‘Take Back The City’


이어지는 ‘Set Down Your Glass’나 ‘The Planets Bend Between Us’는 반대로 듣는 이를 조용하게 설득한다. 이 노래들의 분위기는 한껏 우울하면서도 한편으로 청자를 위로한다. 딱히 힘든 일이 없어도, 아니 주관적으론 충분히 버겁지만 그것을 억지로 객관적 판단의 잣대로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하려 할 때의 부조화 같은 느낌을 이 곡들이 잘 어루만져준다.

다른 곡들이 너무 쉽게만 느껴진다면 박자를 기묘하게 배치한 ‘Engines’가 조금 독특한 느낌을 줄 것이다. 물론 후렴구에 이르면 예의 편안한 구성으로 돌아가긴 하지만. 16분짜리 대곡인 ‘The Lightning Strike’가 앨범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이 곡은 앞서 이야기한 앨범의 두 얼굴을 모두 가졌다. [A Hundred Million Suns]는 마지막까지 실망시키지 않는다.

Snow Patrol ‘Please Just Take These Photos From My Hands’

모르겠다. 이 느낌이 얼마나 오래 갈지는. 끈기가 별로 없는 내가 어떤 앨범을 그렇게 오래 듣는다는 게 불가능해 보이긴 해도 어쨌든 지금은 스노우 패트롤의 이 음반이 내 플레이리스트에 항시 저장되어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생판 모르던 대상을 갑자기 알아간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그것도 너무 매력적인 상대를 만났을 때는 마치 기적 같은 일처럼 느껴진다. 지금으로선 스노우 패트롤의 [A Hundred Million Suns]가 그렇다.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