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 토리노 / Gran Torino (2008)

 

시종일관 이를 단단히 씹으며 내뱉는 대사들. 높은 음이 전혀 섞이지 않은 낮은 목소리. 잔뜩 찌푸린 미간. <그랜 토리노>의 까다로운 노인 월트 코왈스키(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온몸으로 인물의 성격을 드러낸다. 아내의 장례식에서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신부를 미덥지 않게 여기고 생전의 아내가 그에게 부탁한 고해성사도 할 생각이 없다. 아들들은 물론 손자들과의 관계 또한 딱딱하기 그지없으며 베트남 흐멍족인 이웃들과 간단한 인사조차 나누지 않는다. 단단한 고집에 욕과 불평을 입에 달고 사는 이 노인네를 주변인들이 싫어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그러던 어느 날 편견과 아집으로 똘똘 뭉친 이 코왈스키의 삶에 이웃집 흐멍족 소년 타오(비 뱅)와 그의 누나 수(아니 허)가 끼어든다. 베트남계 불량배와 흑인 건달들에게 괴롭힘 당하던 그들을 코왈스키가 우연히 도와준 것. 도움을 받은 이에게 반드시 보답을 해야 한다는 흐멍족의 전통에 따라 불량배들로부터 구해준 도움은 물론 코왈스키의 그랜 토리노를 훔치려다 들킨 경험이 있는 타오는 이 까칠한 노인과 며칠간 함께 하며 보답할 거리를 찾아야 한다. 귀찮다며 계속 거절하다 결국 타오의 호의를 받아들인 코왈스키는 꽤 괜찮은 생각을 떠올린다. 이웃들이 필요로 하는 작업을 타오로 하여금 대신 도와주도록 하는 것. 그러면서 둘은 아주 천천히 가까워진다. 집으로 초대해 식구들을 소개해준 수와도 격식 없는 인사를 나눈다. 다가가기 어려웠던 이 노인은 그렇게 마음을 열어간다.


<그랜 토리노>는 주변과의 마음의 장벽을 치고 홀로 살아가던 한 인물이 서서히 그 벽을 치워가는 과정을 그린다. 한국전 참전 후유증 때문인지 자신 아닌 다른 이에 관심도 없고 모든 것을 삐딱하게만 바라보던 노인 코왈스키가 우연히 베푼 호의로 시작된 관계를 통해 삶의 새로운 의미를 찾는다. <그랜 토리노>는 그 과정을 표현하는데 전혀 급하지 않다. 이 영화엔 갑작스런 영화적 반전보다 아주 조금씩 발전해 가는 사람간의 관계가 있다. 영화의 그런 서두르지 않는 태도 때문에 코왈스키의 변화는 설득력 있게 느껴지고 보는 이로 하여금 이들의 관계에 주목하게 한다.

 


사람간에 쳐진 단단한 마음의 벽을 허무는 것이 영화의 기저에 깔린 정서라면 <그랜 토리노>의 표면적인 이야기는 복수다. 불량배들에게 괴롭힘 당하던 타오와 수는 어느 날 심한 상처를 입는다. 코왈스키 안에 숨어있던 왕년의 해리 캘러핸이 다시 숨을 내뱉는다. 몸은 노쇠했지만 상대를 압도하는 기백만은 그대로인 코왈스키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관객은 이미 코왈스키의 마음의 장벽이 치워진 상태이며 그래서 그의 분노는 참을 길 없다는 것을 안다. 허나 그렇다고 또 섣부르게 당겨질 방아쇠를 기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랜 토리노>는 아주 긴 여운을 남길 엔딩만을 남겨둔 채 그렇게 보는 이를 긴장시킨다. 영화는 그 동안 깔아둔 복선들을 자근자근 짚어 가면서 결코 잊을 수 없는 마지막을 향해간다.


다른 이들에 의해 너무 흔히 반복되어 이미 진부한 표현이 되었지만 어쩔 수 없다. <그랜 토리노>를 보는 동안 불현듯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얼굴 주름 가득한 이 할아버지는 내놓는 작품마다 가슴을 뒤흔드는 감정의 줄기를 심어 놓는다. 노장 감독의 아직 끝나지 않은 미래를 계속해서 보고 싶다. 부디 오래오래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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