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문 / Moon (2009)

* 스포일러 포함

가까운 미래. 달에서 홀로 지구로 전송할 에너지원을 채취하는 샘(샘 록웰)은 3년간의 계약기간이 끝나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드디어 2주만 견디면 아름다운 아내와 보석 같은 딸아이가 그를 기다리는 그리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기지 안의 살림꾼 로봇 거티(케빈 스페이시)와의 건조한 대화도 이젠 끝이다. 이제 진짜 인간이 살아있는 지구로 가는 거다.

그러던 어느 날 에너지 채석 기계 점검을 위해 기지 밖으로 나간 샘은 어둠 속에서 환상을 본다. 순간 채석 기계와 충돌, 정신을 잃는다. 기지 안에서 깨어나는 샘. 누군가에 의해 구조된 것일까? 정신을 차린 샘은 고장 났다던 실시간 영상통화를 통해 본부와 연락하는 거티를 발견한다.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이유로 움직임마저 통제된 그는 드디어 모든 것을 미심쩍게 여기기 시작한다. 프로그래밍된 기계는 인간의 두뇌를 따라올 수 없는 법. 샘은 거티를 따돌리고 기지 밖으로 나가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고현장에 그대로 있는 샘을 발견한다. 어찌된 노릇일까.


영화 <더 문>의 초반, 모든 것은 답답하다. 화이트로 꾸며져 폐쇄감을 증폭시키는 기지 안 인테리어에서부터 우주라는 광활한 공간에 홀로 놓인 한 인간의 고독한 처지까지, <더 문>의 시작은 빨리 이 공간을 벗어나고 싶은 주인공의, 혹은 관객의 욕망을 충동질한다. 네트워크로 더욱 치밀하게 연결되어 있을 근 미래 사회에서 통신위성마저 단절된 이곳은 어쩌면 세계로 통하는 모든 연결점을 차단당한 인간의 극한을 시험하는 장소인지도 모른다.



혼자뿐이었던 공간을 떠나 지구로 돌아갈 시기가 다가온다는 것은 미쳐버릴듯한 고독 속에 던져진 그에게 남은 한 가닥 희망이다. 그러나 자신의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그 모든 기억이 실은 이식된 것이며, 남아있던 마지막 희망마저 조작된 것임을 발견했을 때, 샘은 절망에 빠진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영화 속 설정은 현실의 공포 그 자체다. 복제인간 샘은 수명이 다해 꺼져가는 배터리처럼 유통기한이 지나 용도가 폐기되는 부속이다. 러닝타임 내내 무언가가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은 답답함을 느끼는 것은 샘의 처지로부터 자연스레 감정이입을 느낄 수 있는 현대사회의 부속, 바로 우리들의 처지 때문이다. 빽빽한 톱니바퀴 안에서 꿈을 삭제 당한 채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바로 샘이다. 자신과 똑 같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그 누구로부터 서있는 위치를 잠식당해 외로이 폐기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복제인간의 인생이다.


그러나 <더 문>은 기약 없는 희망만을 기다리며 쉬이 지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샘의 복제인간 샘은 투쟁한다. 영화는 그 희망의 첫 발자국을 슬쩍 보여주며 자리를 비킨다. 거대자본의 착취 속에 인격이 아닌 일개 기계로 치부되던 샘은 마침내 능동적으로 저항하는 인간으로 탈바꿈한다. 그는 자유를 되찾았을까. 영화는 성급한 결론이나 대책 없는 해피엔딩 없이 궁극적인 해방으로 향하는 길의 입구를 관객에게 보여준다.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는 우리의 삶처럼 <더 문>의 엔딩은 보는 이를 설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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