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네이터 : 미래 전쟁의 시작 / Terminator Salvation (2009)

시리즈 영화를 보다 보면 간혹 전편을 뛰어넘는 속편을 발견할 때가 있다. 멀리는 <스타워즈 에피소드 5 : 제국의 역습>이, 가깝게는 <본 슈프리머시>가 떠오른다. 물론 흥행수치만으로 그 영화적 가치를 판가름할 수 있을 리는 만무하고, 한 작품에 대한 개개인의 감상은 그 개개인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하니 이 또한 쉽게 단정짓기 어려운 문제다. 단지 시리즈의 시작이 되었던 작품에 함몰되지 않고 그 나름의 독립적인 정체성을 획득했다는 것이, 이 영화들을 성공적인 속편이라 칭할 때 가장 그럴듯한 부연설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터미네이터 2 : 심판의 날>(이하 <터미네이터 2>) 역시 그런 영화였다. 1편 <터미네이터>가 관객에게 숨막히는 스릴을 선사함과 동시에 마치 공포영화처럼 처절한 탈출 욕구를 불러 일으켰다면, <터미네이터 2>는 놀라운 시각효과를 동반한 폭발적인 액션을 바탕으로 간간이 유머를 배치하거나 끈적한 버디무비 같은 ‘쿨’한 감성을 선사한다. <터미네이터 2>는 전편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적은 제작비로 헐리웃을 점령한 1편이 기념비적인 위치를 차지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야기의 성격을 효과적으로 전복하면서도 시리즈의 정통성을 잃지 않은 <터미네이터 2>는 또 하나의 전설이 되었다.


쉬어가는 페이지 같았던 <터미네이터 3 : 라이즈 오브 더 머신> 이후, 인조 피부가 벗겨진 터미네이터의 금속 얼굴은 더 이상 볼 일이 없을 줄로만 알았다. 단 두 편을 통해 악과 선, 극한의 두 캐릭터를 변주했던 아놀드 슈왈제네거. 3편의 그는 그런 스스로의 과거를 적당히 패러디한 것처럼 보였다. 시리즈의 적자가 아닌 소외 받는 서자 같은 영화. 3편은 바로 그런 느낌이었다.



<터미네이터 : 미래 전쟁의 시작>(이하 <터미네이터 4>)에 대한 제작 소식이 흘러나올 때만 해도 3편에서 쇠약해진 육체를 감춰보려 애쓰던 아놀드가 떠올랐다. 이 시리즈는 그의 이름을 빼놓고는 이야기될 수가 없었으니까. 터미네이터를 배제한 채 어떻게 터미네이터를 보여줄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이 속편의 감독에 <미녀 삼총사> 시리즈의 맥지가 내정되었다는 뉴스를 들었을 땐 드디어 속으로 ‘GG’를 외쳤다. 게임 오버. 더 이상의 터미네이터는 없다.

그런데 인간의 예상이나 기대란 언제나 믿을 만한 것이 못 되는 법. 크리스찬 베일과 샘 워싱턴을 앞세우고 등장한 <터미네이터 4>는 감독의 이름과 이력을 잊어도 좋을 만큼 음침한데다 스카이넷이 주도한 핵전쟁 이후의 디스토피아를 실감나게 그려내는 데 성공한다. 영화 중간중간 윤곽을 드러내는 구형 터미네이터들의 모습은 마치 좀비의 그것처럼 지긋지긋한 불쾌감을 불러 일으키는데, 이는 곧 <터미네이터>에서 주인공들을 ‘종결’시키려 쫓아오던 아놀드의 표정 없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떼어버릴 수 없는 가공할 공포가 연출이 아닌 디자인으로 형상화되었다.


여기에 스스로 21세기의 블록버스터임을 상기시키듯 사실처럼 묘사된 거대한 기계와 로봇의 향연이나 살벌한 컴퓨터의 통제하에서 살아 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인간의 모습은, <트랜스포머> 혹은 <매트릭스>를 떠올리게 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이 가상의 세계에 쉽게 빠져들게 만든다. 또한 두 남자 주인공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 대결이 영화에 대한 긍정적 반응을 이끌어내는 데 한 몫 했다. 영화 막판 왕년의 숨막히는 몸매를 되찾은 ‘T-800’을 두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보너스.

전작의 명성, 정확하게는 <터미네이터 2>를 뛰어넘지 못했다고 해서 <터미네이터 4>를 실패한 속편이라 단정지을 수는 없다. 그 영화는 이 시리즈에 있어 이미 하나의 거대한 벽이니까. 마커스의 정체에 관해 이해되지 않는 극중 설정과 다소 심심한 클라이맥스, 전작들로부터 완전히 분리해 나온 듯한 어색한 무거움이나 폼 잡기에만 열중하는 캐릭터 그리기에도 불구하고 <터미네이터 4>가 독립된 완결성을 가진 볼만한 속편이라 여겨지는 것은 이 영화가 전편의 명성에만 기대지 않고 스스로의 자리를 열심히 찾아가려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감독, 맥지에 대한 선입견을 산산이 부숴주는 영화가 바로 <터미네이터 4>다. 마치 시리즈의 분기점과도 같은 이 영화, <터미네이터 4>를 뛰어넘을 성공적인 속편을 우리는 볼 수 있을까.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