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 / Up (2009)

아이도 없이 부인마저 먼저 보낸 쓸쓸한 노인 칼(애드워드 애스너)에게 삶의 낙이 무엇인지 묻기 위해선 대단한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그에게 남아있는 것이라곤 이주협상에 응하지 않은 결과로 재개발지역 한 가운데 마치 낯선 혹처럼 뚝 서있는 자그마한 집 하나. 하지만 이 볼품없는 집은 아내 엘리와의 행복했던 기억들이 담겨있는, 그에겐 가장 소중한 공간이다.

그 무엇보다 스스로의 이권을 먼저 챙기려는 이들의 머리 속에 이 고집 세고 무뚝뚝한 노인을 향한 자비 따윈 없다. 칼은 그들에게 있어 눈엣가시 같은 존재. 결국 집을 떠나야만 할 위기에 처한 칼은 기막힌 도전을 한다. 아내와 함께 늘 가보길 원했지만 그러지 못했던 미지의 파라다이스 폭포를 향해 집을 띄우는 것.


수많은 헬륨 풍선을 달고 집이 통째로 띄워지는 장면은 칼과 엘리, 두 사람을 이어줬던 모험에 대한 열렬한 동경이 통쾌하게 현실화되는 이미지다. 이 흥미진진한 여정에 자신의 어린 시절과 닮아있는 모험소년 러셀(조던 나가이)이 끼어든다. 혼자만의 생활에 익숙해진 칼에게 불청객 취급 받을 것이 눈에 선하지만, 이 둘은 곧 모험이라는 공통분모를 공유하며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그랜 토리노>에서 주변인들에게 천천히 마음을 열어갔던 월트 코왈스키처럼 아내가 떠난 후 닫혀 있던 칼의 마음도 차차 열려간다. 부인과의 추억의 둥지에서 나오지 않은 채 주변과의 소통을 멀리 해온 칼은 러셀과 동행하며 꿈을 향한 인생의 모험 안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재발견 한다. 그의 인생을 사로잡았던 꿈의 실현이 주위와의 교감으로 이어진 것이다.

아쉬운 듯한 짧은 러닝타임 안에 꿈을 찾아가는 이들의 소통 과정이 군더더기 없이 펼쳐지는 데, <업>은 보는 이로 하여금 그 모습을 공감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캐릭터의 동작 하나하나, 장면 하나하나에서조차도 놀라울 만큼 세세한 시선이 느껴지는 이 한편의 애니메이션이 새삼 픽사의 작품이었다는 사실이 떠올려진다. 결코 팬들을 실망시킨 적이 없는 그 이름. 조금은 까칠하지만 귀여운 할아버지 칼과 천진한 러셀을 비롯, 밥 피터슨이 직접 더빙한 말하는 강아지(?) 더그와 영화 속 파랑새의 역할인 희귀새 케빈까지, 픽사의 사랑스러운 캐릭터 만들기 작전은 <업>에서도 성공적이다.


영화 초반 칼과 엘리의 결혼생활을 대사 하나 없이 암시와 이미지로만 엮어놓은 시퀀스는 픽사 애니메이션사에 있어서도 길이 남을 만한 명장면이다. 인간사의 기쁨과 슬픔이 정직하게 스며든 칼의 인생을 통해 스크린 밖 인간군상의 인생들을 바라본다. 서로 그 무게와 깊이는 다르지만 누구에게나 나름의 스토리로 존재할 법한 이 인생의 희로애락이 보는 이의 공감과 감탄을 이끌어내는 동안, 모험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할아버지의 삶의 태도가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

누구나 인생의 길을 걸어 가면서 기쁨이 주었던 희망, 슬픔이 건네는 안타까움을 만난다. 그리고 꿈을 버리지 않을 때, 이 모두가 스스로를 다지고 더 큰 미래로 향하게 하는 원동력이자 밑거름이 된다. 영화의 엔딩, 꿈을 잃지 않은 칼 할아버지의 얼굴과 실현된 꿈의 상징인 파라다이스 폭포의 모습이 교차되는 장면에서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되는 것은, 이 한편의 영화가 우리로 하여금 그 진리를 가슴 깊이 새기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리라. <업>은 상쾌한 웃음 안에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을 더한다. 포기하지 않는 꿈, <업>은 한편의 놀라운 애니메이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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