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텍스트큐브닷컴에서 토트(Thoth)로 이사 후 처음 올린 포스팅이다. 날짜는 5월 9일. 그러고보니 벌써 세 달 전의 일이다.
Textcube에서 Thoth로 이전 완료
이사가 달가우리 만무하다. 이삿짐을 싸는 순간부터 그것은 설렘과는 거리가 먼 귀찮은 작업이 되고 만다.
새 둥지를 찾는 과정은 쉽지 않다. 보일러는 잘 구동되는지, 집으로 들어오는 햇빛은 알맞은지, 이웃들은 조용한 편인지, 대중교통수단으로부터 고립된 지역은 아닌지, 혹시 집주인이 전세금을 떼먹고 해외로 도주할 가능성은 없는지, 정말 여러 사항들을 동시다발적으로 고려하느라 밀려오는 두통을 피할 수 없을 지경이다.
웹상에서라고 크게 다르랴. 텍스트큐브닷컴을 쌈 싸먹고 날라버린 구글 덕분에 요 며칠간 이곳 저곳 들락거렸다. 공짜로 쓰던 서비스가 자기들 맘대로 사라진다 하여 누구를 탓하겠느냐마는, 서로 다소 무심하게나마 잘 지내다 갑작스런 이별통보라도 받은 듯 마음 한구석 쓰라리고 번거로운 감정이 안 들 수는 없는 법.
티스토리로부터 이어졌던 텍스트큐브닷컴을 뒤로 하고 네이버, 이글루스, 크래커 등을 염두에 두다 결국 의외의 장소로 굴러 들어왔다. 바로 이곳 토트(Thoth).
몇 가지 조건은 있었다.
근본주의적 컴맹인 관계로 설치형이 아닌 가입형일 것. 호스팅이 어쩌고 HTML, CSS 등 외계어가 난무하는 그 곳은 저 안드로메다보다도 먼 별세계.
미래가 보장되어 있을 것. 솔직한 얘기로 몇 번 번거로운 이사를 겪다 보니 아예 50년쯤은 끄떡없을 탄탄한 기업에서 블로그 사업을 시도해 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상상도 해본…봤지만 순간 나의 커다란 착각이었다. 구글은 뭐 '듣보잡' 기업이라 그렇게 날랐나. 요건 취소.
애드센스쯤은 부착 할 수 있어야 할 것. 한 달에 '월드콘' 하나 거뜬히 사먹을 수 있을 정도의 용돈을 내려주시는 그대는 내 블로그의 존재이유(설마!). 단 절대 두 개는 못 사먹는다.
나중에 이사 갈 때 짐이라도 쌀 수 있게 해줄 것. XML 파일인지 뭐시긴지는 생성해 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면에서 텍스트큐브닷컴이 미우면서도 새삼 고맙다.
이 정도는 충족시켜줘야 감히 자리를 잡을 수 있으리라 여긴 것.
그래서 결국 대충 이 조건들에 부합하는 토트에 자리를 펴고 앉긴 했는데…
여기에도 적잖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일단 XML 파일로 데이터를 불러왔는데 포스팅들이 죄다 저장으로 되어 있다. 글 하나하나마다 발행버튼을 눌러줘야 비로소 공개된 글이 된다. 나야 뭐 300여 개뿐(!)이니 그렇다 쳐도 500 단위만 넘어가도 '토나온다'는 소리 목구멍까지 치밀 게다. 그 뿐이냐. 저장된 글을 한꺼번에 발행하느라 동시간에 소중하게 꾸린 포스팅 발행하고 있는 여타 토트 사용자들에게 민폐 아닌 민폐도 끼칠 수 있다. (끼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발행된 시간이 최종 포스팅 날짜가 되므로 과거에 썼던 글들이 죄다 현재진행형이 되어 버렸다. 이 때문에 이사를 망설이긴 했는데… 댓글들로부터 글의 탄생일들을 어렴풋이나마 유추해낼 수 있으니 그걸로 위안을 삼을란다. 이것 저것 다 따지다가 이사도 못하고 시간만 까먹는 꼴이 눈에 선했다.
불러온 이전 포스팅들을 하나씩 점검해야 하는 것도 일이다. 수많은 하이퍼링크 손봐야 하고, 이미지들도 정렬이 안 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성격이 대범해 이 정도는 그냥 넘어가면 좋은데, 이를테면 이미지와 텍스트간의 간격이 제 각각이거나 엉뚱한 링크로 통하는 지점들이 버젓이 있는 걸 가만히 둘 수가 없다. 이럴 때 '소심하다'는 단어를 쓴다. 아, 블로그 이사 정말 싫다. 토트여, 제발 망하지 마라.
디폴트 스킨이 몇 개 되지 않는다는 점도 당황스럽다. 음, 텍스트큐브처럼 어딘가 활용할 수 있는 스킨 저장소가 있을 것 같은데, 한번 찾아봐야겠다.
이 정도는 첫인상이고 이제부터 차차 익혀가면서 발견할 장점과 단점이 있을 거다.
어쨌든 새로 둥지를 틀었고 과거와 작별하는 또 하나의 강을 건넌 셈이다. 블로그가 사실 별거겠냐마는 일정 기간 동안의 내 생각이 펼쳐져 있는, 또 그 안에서 한때의 오류들이 여지없이 발견되는 와중에도 처음부터 새로이 시작하지 않고 완전포장이사라는 방법을 택한 이유는, 바로 그 변천사 안에서 '나'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블로그, 토트에 마련한 바로 이 자리만큼은 텍스트큐브닷컴 같은 불상사 없이 부디 오래 존속되길 간절히 비오며, 블로그 인생 제3기(티스토리-텍스트큐브닷컴-토트)에 접어드는 "제노모프의 둥지"의 첫 문을 이렇게 연다.
텍스트큐브닷컴은 아직 그대로 있다. 블로거닷컴으로 이전해 줄 테니 남으려면 남고 맘에 안 들면 떠나라는 공지가 뜬 게 엊그제 같은 데 그런지도 벌써 세 달이나 지났다. 금방 없애버릴 줄 알고 허겁지검 토트로 이사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토트에 불만이 있어서 이렇게 떠나온 건 아니고 단지 익숙한 곳으로 돌아오고 싶었다. 텍스트큐브닷컴으로 갈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티스토리로 왔다. 토트에서 받은 백업파일을 티스토리에 업로드하니 왠지 글 발행 일자가 뒤죽박죽 되어버려 예전 텍스트큐브닷컴 백업 XML파일을 사용했다.
웬만하면 이사는 이제 그만 하련다. 그 많은 하이퍼링크 차근차근 손 볼 생각하니 유쾌하지 않다. 그냥 그대로 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