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우시절 (2009)

중국 사천성 청두에 출장 온 동하(정우성). 마중 온 지사장(김상호)과 잠시 짬을 내 두보초당(杜甫草堂)에 들른다. 홀로 기념관 안을 둘러보던 동하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를 따라간다. 그곳에서 미국 유학시절 좋은 감정을 나눴던 메이(고원원)를 만난다.

영화는 영원히 못 볼 줄만 알았던 예전 연인과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다는 평범하지만 여전히 설레는 이야기의 배경에 소박하고 아름다운 중국의 풍경을 펼쳐 놓는다. 동하가 곤욕을 치르며 먹게 되는 청두의 특산요리조차도 기억해도 좋을 만한 이국적인 추억으로 남는다. 영화에서 청두는 또 하나의 주요한 등장인물이다.


<호우시절>은 리차드 링클레이터의 <비포 선셋>의 모델버전같은 느낌이다. 국적 따위는 방해물이 되지 못하는 젊은 연인들의 짧은 재회 속에 동하와 메이의 훤칠하고 청순한 외모가 빛을 발한다. 긴 대화를 나누며 우회하여 서로에게 다가가는, 또 동시에 서로의 본질에 더욱 가까워지는 제시(에단 호크)와 셀린느(줄리 델피)에 비해, 동하와 메이는 다소 이미지적인, 예쁘장한 만남을 가진다. 둘이 나누는 대화에도 별다른 곁가지가 없다. 조금 안타깝게도 영화 속 메이의 비극으로부터 그다지 큰 울림이 느껴지지 않은 것은 아마 그런 영화의 외양 때문일 것이다. 아, 그리고 사귀던 시절 키스 한 적이 없었다고 귀여운 장난을 치는 메이는 빈에서의 하룻밤 결코 섹스를 나누지 않았노라 시침 떼는 셀린느를 꼭 닮았다.

 


필모그래피를 통해 헤어진 연인들의 기억, 잊힌 사랑의 감수성을 진지하게 건드려왔던 허진호는 이번엔 왠 일인지 때깔 좋고 간혹 실소를 머금게 하는 유머도 곁들인 평범한 멜로드라마를 만들었다. 아름다운 청두와 주인공들의 미래를 가늠하게 하는 기분 좋은 결말이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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