킥 애스 : 영웅의 탄생 / Kick-Ass (2010)

영화 <킥 애스>로부터 받을 수 있는 가장 강렬한 첫인상은 <다크 나이트>나 <엑스맨> 시리즈의 어두운 톤과 확연히 구분되는 그 오색찬란한 색채감각이다. 이 영화의 기원에 대해 조금도 준비 하지 않았다면, 역시 마찬가지로 형형색색의 코스튬을 선보이던 유쾌한 슈퍼히어로 영화 <스카이 하이>와 영화의 분위기가 비슷하리라 오해 할만도 하다.

단적으로 말해 <킥 애스>는 앳된 10대 소년, 소녀가 적의 머리에 총알 구멍을 내고 악당의 팔을 너덜너덜하게 부러뜨리고 그들의 배를 회 뜨듯 칼로 뚫어버리는 영화다. 밝은 색의 코스튬으로 아래 위를 꾸민 이 영웅들은 그 겉모습에 어울리지 않게 잔인한 액션을 선보인다. 다만 고어씬에 선천적으로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일부 관객들은 이들이 그나마 화면 전체를 피 칠갑으로 물들이진 않는다는 데 고마워할 수는 있겠다.

주인공 데이브(아론 존슨)는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주류에 편입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소극적인 아웃사이더다. 여학생들에게 인기 없는 건 물론 함께 다니는 친구들도 비슷한 녀석들뿐. 그에겐 청춘의 이 지루한 분위기를 반전시킬 뭔가가 필요하다.


데이브는 그 돌파구로 영웅 행세를 선택한다. 그러다 마침 동네 양아치들로부터 린치를 당해 중대한 수술까지 받는다. 환골탈태. 모든 슈퍼히어로들이 겪었던 바로 그 단계를 그도 거친 것. 감마선에 쬐어 괴력의 녹색괴물이 된 브루스 배너, 유전자 조작 거미에게 물려 도시를 거미집 삼아 날아다니는 피터 파커가 그의 선배 뻘이 될 뻔했다.

하지만 수술비가 부족했었는지 데이브는 수술 후 그저 맷집이 조금 늘었을 뿐이다. 브루스 웨인이나 토니 스탁처럼 재력이 있어 부족한 신체능력을 최첨단기술로 포장할 수 있는 것도 아닌 이 소년에겐 안타깝게도 아무런 특수능력이 주어지지 않았다.



한편 도시의 실제 히어로들인 빅 대디 데이먼(니콜라스 케이지)과 힛 걸 민디(클로이 모레츠)는 상상을 초월하는 훈련으로 스스로 영웅의 능력을 갖춘 이들이다. 어느 날 불량배들과 데이브 간의 처절한 싸움이 유튜브를 통해 퍼져나간 후 이들의 교류는 본격화된다. 그리고 도시의 악의 핵심인 프랭크(마크 스트롱)을 처단하기 위해 힘을 합친다.

<킥 애스>에서 영웅의 탈을 쓴 주인공들은 엑스맨의 돌연변이들이 보여주던 화려한 특수능력 같은 건 보여주지 않는다. 킥 애스 데이브는 물론 빅 대디와 힛 걸 역시 초능력이 아닌 남과 다르거나 혹은 남들보다 발달된 신체능력으로 적에 대항한다. <킥 애스>에서 관객을 설레게 하는 액션씬이 있다면 그건 힛 걸이 일당백으로 악당들을 제압하는 장면. 그 쾌감은 아마도 10대 초반으로 보이는 소녀가 아무 거리낌 없이 적을 베어버리는 데서 오는 윤리적 불편함과 그녀의 귀여운 외모 사이와의 묘한 불일치에서 발생할 것이다. 훼손된 적들의 신체를 바라보며 웃음짓는 그녀의 얼굴에는 천사와 악마가 공존한다.


물론 영화는 그에 대해 어떤 윤리적 가치판단도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힛 걸이 악당들을 베어버리는(심지어 아무리 악당의 편에 있더라도 폭력씬으로부터 얼마간 보호받을 수 있었던 여성까지 찔러버리는) 장면에 경쾌한 사운드트랙을 입히면서 살육의 현장을 신나는 놀이의 하나로 연출한다. 마치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속 한 장면처럼.

<킥 애스>가 그런 영화 외부의 불편한 시각에 관심이 없어 보이는 이유는 이 영화가 선과 악의 대결보다 불과 몇 년 안에 사회에서 안정된 자신의 자리를 찾아내야 하는 10대 소년의 불안한 성장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소년은 때로 무모하리만치 과감하고 또 어느 땐 비겁해 보일 정도로 머뭇거린다. 모든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고 또 그만큼의 인정을 끌어내는 완벽남 부르스 웨인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킥 애스>는 자신에 대해 아무런 애정과 확신도 없던 소년이 혼란의 터널을 지나 과연 도시를 수호할 수 있는 배트맨이 될 수 있을지를 묻는 영화다.

공공의 안전이 아니라 개인의 복수심으로부터 시작된 빅 대디의 히어로 행세 역시 불완전하긴 마찬가지다. 과대망상증을 앓고 있는 환자의 그것처럼 보이는 데이먼의 행동들은 설령 그가 지독한 폭력의 처절한 피해자였다 하더라도 결코 정당하거나 안전해 보이지 않는다. 아동학대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힛 걸의 훈련장면만 봐도 그가 얼마나 불안정한 인물인지 알 수 있다. <킥 애스> 속엔 완벽한 인간은 물론 영웅도 없다.


이 영화는 가벼워 보이면서도 무겁다. 적나라한 폭력 장면뿐 아니라 인물들이 가진 트라우마와 열등감이 <킥 애스>의 밝은 색채가 실은 그 안의 진지함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한 하나의 반어법적인 장치에 불과했음을 말해 준다.

<킥 애스>는 관객에게 팝콘과 콜라를 웃음과 함께 삼키며 악당들의 신체가 요리되는 걸 즐겁게 감상하라는 영화이며, 속편을 통해 데이브가 어떤 성인이 될지(동시에 킥 애스가 어떤 영웅의 모습을 갖출지) 관객을 궁금하게 만드는 영화이기도 하다. 데이브와 킥 애스는 과연 어떻게 변해갈지. 브루스 웨인의 배트맨에 가까워질까, 아니면 피터 파커의 스파이더맨과 비슷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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