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의 FM (2010)

딸아이의 치료를 위해 미국행을 결심한 아나운서 고선영(수애)은 자신이 진행하는 심야 라디오 영화음악 프로의 마지막 방송을 준비한다. 아쉬워하는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하며 그들의 신청곡으로 두 시간을 채우고 나면 이제 그 동안 정들었던 스튜디오와도 작별이다. 한편 고선영의 후임으로 내정된 아나운서가 시체로 발견되고 스튜디오에는 이 프로그램의 열혈 청취자라는 사람의 괴전화가 걸려온다. 수화기 너머의 인물은 고선영의 집에 침입해 그녀의 가족들을 인질로 삼는다. 그는 마지막 방송을 자신의 요구대로 하지 않으면 그녀의 여동생과 아이들을 해치겠다고 협박한다. 이 전화를 누군가의 짓궂은 장난으로만 여겼던 고선영은 점점 끔찍해지는 현장의 상황이 휴대폰으로 전해지자 그제서야 이것이 악몽이 아닌 현실임을 깨닫는다.


<심야의 FM>을 보기 전까지 이 영화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TV 채널을 돌리다 어디선가 수애의 인터뷰를 본 것 같긴 한데 그게 이 영화의 개봉 때문에 이루어진 것인 줄은 몰랐다. 어쨌든 수애와 (극장 안 포스터를 통해서야 알게 된) 유지태를 제외하면 등장하는 배우에서부터 감독, 대강의 줄거리까지 이 영화에 대해 전혀 모른 채 극장에 들어섰다. 아, 'FM'이 삽입된 제목으로부터 DJ가 등장하는 영화이리라는 짐작은 할 수 있었지만.

 


영화를 본 지금 난 분주하게 감독의 이름부터 찾는다. 반전 장치가 빠진 스릴러 영화란 김치 없는 한국인의 식탁처럼 여겨지는 지금의 영화풍토에서, 무모하게 여겨질 만큼 범인과 사건을 미리 공개해 놓고도 이토록 흡인력 있는 영화를 만든 이가 도대체 누구인지 알고 싶었다.


장면은 촌스럽지 않고 대사는 어색하지 않으며, 배우들은 영화 속 비현실적인 상황 안에서도 너무나 자연스러운 연기를 펼친다. 특히 수애는 약간 얄미울 만큼 독선적인 커리어 우먼의 성격을 기본으로, 그 단아한 얼굴에 위기에 빠진 딸을 향한 슬픔과 범인에 대한 분노를 그대로 그려낸다. 심야방송을 진행하는 아나운서의 그것일 법한 발성은 물론이고 속도감 있게 변하는 극단적인 위기 안에서의 당황과 끔찍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애쓰는 침착 사이의 감정 변화를 너무 잘 연기한다. <심야의 FM>에서 관객으로 하여금 거짓말 같은 범죄상황을 마치 실제 있을 법한 것으로 여기게 하는 일등공신은 다름아닌 수애의 연기다.

유지태는 정신분열증을 가진 잔인한 스토커 한동수를 소름 끼치게 연기한다. 그의 얼굴에서 <올드보이> 속 이우진의 표정이 얼핏 떠올려진다. 캐릭터가 다면적이지 않고 극단적인 성격만을 가진 점은 조금 아쉽지만, 그런 단순한 설정이 시시각각 급변하는 영화 속 상황에 오히려 잘 어울린다.


<심야의 FM>에는 영화 중반 한동수와 아이들과 벌이는 숨바꼭질, 고선영과 한동수의 차량 추격전 등,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잘 연출된 장면들이 꽤 등장한다. 스릴러 장르로서 이미 사건 전반이 공개되었다는 치명적인 이야기 구조 안에서도 이 영화가 관객의 시선을 잡아 두는 건 이런 새로울 것 없는 장치들을 잘 요리해 낸 감독의 연출력 덕분일 것이다. 그것이 좋은 배우들의 설득력 있는 연기와 잘 배합되었음은 물론이다. 앞으로의 작품이 기대되는 감독 리스트에 또 한 줄을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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