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맨 : 퍼스트 클래스 / X-Men : First Class

브라이언 싱어는 그 스스로가 '엑스맨' 시리즈의 프로페서 X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가 마블이 아닌 다른 집안의 빨간 '빤스' 영웅에게 혹해 돌연변이들을 버리고 떠났을 때도 아마 이 시리즈의 팬들은 그가 언젠가 돌아와 주리라는 막연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려 깊고 인자한 찰스 이그재비어가 자기가 길러낸 돌연변이들을 영원히 내팽개치리라는 상상은 할 수 없으니까.


그리하여, 정말, 브라이언 싱어가 돌아왔다!

<엑스맨 : 퍼스트 클래스>는 그 무엇보다 시리즈 창조자의 귀환이 반가운 영화다. 브렛 래트너가 신나는 초능력의 격전지로 만들었던 <엑스맨 : 최후의 전쟁>이나 개빈 후드가 테스토스테론 가득한 마초 액션물로 그려낸 <엑스맨 탄생 : 울버린> 모두 나름 재미있었지만, 이 영화들에서 <엑스맨>과 <엑스맨2>가 가진 미려한 균형감각을 느낄 순 없었다.

브라이언 싱어가 가진 균형감각은 겉모습만 화려할 수도 있는 수퍼히어로 블록버스터에 이야기할 거리를 불어넣는다는 점이다. '트랜스포머' 시리즈를 그저 하스브로 완구사의 화려한 CF로 만들어버리는 마이클 베이와는 정반대의 위치에 서있다고 볼 수 있을까.

그가 각본과 제작자로 돌아온 <엑스맨 : 퍼스트 클래스>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에서 보이는 매튜 본의 스타일은 가벼움과 진중함을 적절히 섞어내는 브라이언 싱어의 그것과 흡사하다. 초기 두 편의 영화에 <킥 애스>의 발랄함을 가미한 느낌이다.


이 프리퀄에서 주인공 외에 가장 흥미로운 캐릭터는 행크/비스트(니콜라스 홀트)와 레이븐/미스틱(제니퍼 로렌스)이다. <엑스맨 : 퍼스트 클래스>가 시리즈의 1,2편, 브라이언 싱어가 남긴 흔적과 강력하게 연동되는 지점이 있다면 바로 이 두 명의 돌연변이가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부분일 것이다. 행크는 평범한 인간으로 살기를 갈망하나 완전한 돌연변이가 되고 레이븐은 스스로의 능력으로 남과 다름없는 인간의 모습으로 살 수 있지만 결국 미스틱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영화는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 이들이 결국 자신의 본 모습으로 돌아온 거라고 설명한다.

미스틱에게 남과 다름을 인정하고 스스로를 자랑스러워 하라는 에릭 랜셔의 메시지가 조금 구태의연한 조언처럼 느껴지긴 해도, 절망, 고민, 자아의 발견 같은 캐릭터의 내면을 관객이 들여다 볼 수 있게 되면서 이야기가 풍부해지고 영화의 매력이 배가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거미줄로 도시를 수놓으며 레펠을 즐기든, 박쥐 코스튬을 입고 고층빌딩에서 자유낙하를 하든, 겉으로는 자유로워 보이는 그 어떤 영웅이라도 이제는 내면에 한 두 가지쯤 고민을 가진 시대가 되었다. '쿨'한 능력(혹은 재력)을 가진 그들에게 악당 또는 연인 외에 큰 걱정거리가 없으리라는 관객의 선입견이 깨진 지 오래다.

이번 프리퀄에서 아쉬운 부분을 굳이 얘기한다면 그건 전편들에 비해 액션의 강도가 감소했다는 점일 게다. <엑스맨 탄생 : 울버린>은 무척(!) 앙상하고 어색한 이야기구조를 가지고 있었지만 시리즈 사상 가장 강력한 액션을 보여줬다는 점만은 인정받아야 한다. <엑스맨 : 최후의 전쟁> 역시 화려한 초능력의 놀이터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그 둘이 보여준 이미지에 비하면 <엑스맨 : 퍼스트 클래스>의 액션씬은 영화의 설정처럼 마치 시간을 거스른 것 같다.


하지만 <퍼스트 클래스>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액션장면이 아니라 역시 캐릭터다. 증오에 가득 차 있어 행동에 망설임 없으면서도 특유의 여유를 발산하는 젊은 에릭 랜셔는 캐릭터 자체가 우아하고 거대한 에너지처럼 느껴진다. 아직 머리가 벗겨지지 않은 찰스 이그재비어는 자신의 텔레파시 능력을 여자를 유혹하는 데 사용하는 의외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돌연변이는 물론 인간에 대한 연민을 숨길 수 없다. 멋진 캐릭터를 구축한 마이클 패스벤더와 제임스 맥어보이를 다음 편에서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참에 아예 브라이언 싱어도 속편의 감독으로 돌아오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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