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의 논리학 (김용규)

설득의 논리학 - 6점
김용규 지음/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나는 논리적인 글에 굉장히 약하다. 이건 두 가지를 의미하는데, 하나는 내가 논리적인 글을 굉장히 좋아한다는 의미에서 ‘약함’이고, 다른 하나는 나 스스로 논리적인 글쓰기가 쉽지 않다는 뜻에서의 ‘약함’이다.

논리적인 글과 말은 굉장히 매혹적이다. 왜냐하면 그런 글일수록 반박할 틈을 찾기 힘들며, 따라서 거기에 대해 내가 무언가를 덧붙일 때마다 내 논리적 체계의 바닥과 마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약간은 매저키스트같은 이 성향은 불가항력적인 힘(혹은 대상)과 맞부딪혔을 때 느끼는 일종의 ‘숭고’의 감정라고나 할까?

 


예를 들면 나와 반대되는 견해가 매우 논리적으로 쓰였을 때, 내가 그것을 비판하는 방법은 정념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부족한 논리력으로 애써 반박해봤자 남는 건 패배감뿐이니까(아니면 뻔뻔한 정당화라든지). 그러나 이성에 욕을 해대는 감성의 기분은 가히 좋지 않다. 때로는 그런 기분을 즐기는 변태들도 인터넷 상엔 많은 것 같지만.

음, 갑자기 이야기가 궤변으로 흐르는데, 어쨌든 요점은 나에겐 논리적인 글쓰기에 대한 열망이 남아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설득의 논리학』같은 책을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설득의 논리학』의 부제는 ‘말과 글을 단련하는 10가지 논리도구’다. 10개로 구성되어 있는 각각의 장은 각각 수사학, 삼단논법, 귀납법, 연역볍, 가추법, 토론술, 논쟁술 등 논리학에 관한 대표적인 영역들을 풀어놓고 있다. 각 장의 끝에는 요점정리식으로 되어있는 요약본과 용어설명이 뒤따라온다.

얼핏 보면 이 책은 논리학을 일상생활에 쉽게 적용할 수 있게 도와주는 지침서 같은 느낌이다. 물론 그 말도 틀리진 않다. 여기서 설명하는 도구들을 적절히 사용할 독자들도 개중엔 있을 테니까. 하지만 전체적인 책의 분위기는 실용서라기보다는 개괄적인 논리학개론처럼 보인다. 논리학개론이라고 해서 딱딱하다는 얘기가 아니라 논리학에서 쓰이는 여러 가지 개념들을 알기 쉽게 풀이해 주고 있다는 말이다.

철학과 신학을 전공한 저자는 『설득의 논리학』에서 역사적인 인물들을 통해 논리학을 얘기한다. 여기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고대 철학자는 물론, 셰익스피어, 셜록 홈스 등의 문학관련 인물들도 등장한다.

가장 재밌던 대목은 쇼펜하우어의 토론술과 논쟁술을 미야모토 무사시의 전술과 연계하여 풀어낸 부분이다. 아마 이 책을 오로지 실용적 목적으로 구입한 독자들에겐 이 장이 가장 유익하리라 생각하는데, 이 장에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물리칠 수 있는 두 사람의 전술을 소개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토론(혹은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선 ‘질문을 질서정연하게 하지 말고 중구난방으로 하라’, ‘그럴듯한 거짓 전제를 사용하라’, ‘상대가 내세운 전제를 확대해석하라’는 것들이 쇼펜하우어의 필승의 지침이다. 저자는 이것이 미야모토 무사시의 싸움 전술과도 닮아있다고 말한다. 어떤가? 한번 배워서 미운 상대를 골려주고 싶지는 않은가?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똑똑한 쇼펜하우어, 싸움의 달인 무사시가 이기는 방법이지 아무나 쓸 수 있는 술수는 아닐 것이다. 즉, 자신의 수준을 알지 못하고 무턱대고 이런 방법들을 써먹었다간 욕만 된통 얻어먹거나 되레 거꾸로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 수단과 방법을 먼저 생각하기 보다는 탄탄한 논리의 바탕이 될 내용을 채우는 편이 더 바람직할 수 있다. 그러나 무사시와 쇼펜하우어의 이기기 위한 집념을 엿보는 것이 재밌긴 하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은 나머지 장들과 성격이 조금 다르다. 이 장에선 진리론을 다루고 있는데, '과연 진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관한 여러 견해들을 보여주고 있다. 예컨대 우리가 논리(도구)로 포장하려 하는 그 근원(내용)이 어떻게 존재하는가에 대한 생각들일 것이다.

『설득의 논리학』을 읽음으로써 애초에 기대했던 나의 논리력이 향상된 것 같지는 않지만, 한권의 재미있는 책을 읽었다는 점에서 만족한다. 또 그런 실생활에의 적용은 오로지 나의 몫이지 책의 도움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닌 듯하다. 혹시 또 누가 알겠는가? 논리적으로 탄탄한 많은 글들을 꾸준히 읽다보면 어느새 나도 쇼펜하우어처럼 논쟁술의 달인이 되어 있을지? 음, 이것도 좀 변태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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