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영화제작에 ‘인해전술’을 도입하기 시작한 것은 이미 꽤 오래 전 일처럼 느껴진다. 헐리웃이 새로운 비주얼 테크놀로지를 경쟁적으로 영화에 적용하고 있는 한편, 중국은 엄청난 인구와 상대적으로 낮은 인건비를 바탕으로 엑스트라만으로도 화면을 채울 수 있는 이 전대미문의 방식(전쟁을 제외한다면)을 사용하고 있다. 엄청난 인력이 투입된 화면은 그 자체로 스펙터클하다. 그러나 사실 이런 방식, 즉 대규모의 군중씬이 어울리는 영화는 대개가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경우이다. 그 자체로 씁쓸한 말이 되는 전쟁의 스펙터클은 실상에서는 혼돈일 테지만 영화에서는 스크린 상의 압도로 나타난다. 어쨌든 진가신의 도 이런 흐름에 영합하는 영화가 틀림없다. 그러나 무작정 머릿수로만 화면을 채우려는 영화는 누가 봐도 질리기..
영화 속 록키는 실제의 스탤론과 정확히 일치한다. 왕년의 챔피언에서 조그만 식당 경영자로 살아가는 노년의 록키 발보아는 최고의 액션스타에서 이제는 자신의 주 무대를 찾기도 힘든 실베스터 스탤론 그 자체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 록키의 대사는 의 감독, 각본, 주연을 모두 해치운 이 노장배우의 마음 속 울림 같다. 록키는 자신 안에 뭔가 풀리지 않는 응어리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나이든 권투선수가 새파란 챔피언(안토니오 타버)과 맞붙어 획득한 것은 승리도 패배도 아니고 스스로의 존재감이다. 추억만으로 살아갈 수 없는 이 주인공은 과거 안의 자신이 아닌 현재의 자신을 찾고 싶었나 보다. 그가 경기를 끝낸 후 친구 폴리(버트 영)에게 그 맺힌 뭔가가 풀어졌다고 고백하는 것은 지금 생생하게 뛰고 있는 자신의 심장을..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댄 에반스(크리스찬 베일)는 남북전쟁으로 다리를 다친 후, 아내, 두 아들과 함께 비스비 마을 근처에서 조그만 목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에반스는 그의 땅을 철도회사에 팔아 넘길 속셈을 가진 홀랜더(레니 로프틴)에게 진 빚조차 제대로 갚지 못할 만큼 경제적 사정이 여의치 않다. 더구나 목장으로 들어오는 수로까지 가로채버린 그에게 이제 모든 것을 빼앗길 판이다. 한편 악명 높은 총잡이인 벤 웨이드(러셀 크로우)와 그의 부하들은 댄 에반스의 소들을 이용해 비스비로 들어오는 철도회사 용병들의 마차를 탈취한다. 이 와중에 그는 댄과 만나고, 그에게 말을 빌려주면 마차를 세우는 데 쓴 소들을 돌려주겠다 제안한다. 보안관 일행을 가볍게 따돌리고 비스비 마을에 도착한 웨..
이안의 최고작이라 일컬어지는 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그의 영화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얘기한다는 것이 마음 편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그의 영화들에 ‘깊이’ 공감하거나 ‘커다란’ 매력을 느껴 본 기억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나마 과 정도를 재미있게 본 것 같고, 제작규모의 크기에 대한 책임감이 없어 보였던 , 정작 영화보다 해석(주변에서 해준 것이든 감독 스스로가 풀어낸 것이든 간에)이 더욱 풍부하지 않았나 생각되는 등, 이후 이안의 영화들은 어딘가 모르게 가깝지 않은 느낌이다. 중화권에서 제작되었던 그의 초기작들을 제외한다면 이처럼 ‘글로벌’한 아시아계 영화작가가 또 있을까 싶은 이안의 필모그래피는 확실히 인상적이지만, 내겐 그것이 ‘소재와 인식의 세계화’ 이외에 어떤 의미도 아니라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
아티스트의 삶을 영화로 재현하는 데에는 두 가지 요소가 필수인 것 같다. 첫째는 그의 생애가 오로지 성공으로만 점철된 것이 아니라 드라마틱하면서도 비극적인 좌절을 함께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 둘째는 아티스트를 재현하는 주연배우의 높은 연기력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전자야 한 사람의 일생을 상업영화의 틀 속에서 재현해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필요한 요소인 것이 분명하고, 후자는 그런 주인공의 실제 삶과 영화적 허구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반드시 따라와야 하는 부분이다. 즉 아티스트를 연기하는 배우의 연기력에 따라 관객이 영화적으로 재현된 그의 인생에 기꺼이 동참하여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지가 결정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에디뜨 삐아프의 삶의 굴곡을 훑는 는 주연배우인 마리온 꼬띠아르에게 너무나 많은 빚..
어쩐지 영화에서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여성들의 이미지는 대개 이런 식으로 정해진 듯하다. 여성이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고 고유의 영역을 차지하는 것은 이제 보기 드문 일이 아님에도 영화 속 커리어 우먼들은 항상 어딘가 괴팍하거나 신경질적이며, 결정적으로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남성들에게 적대적인 것으로 그려진다. 의 케이트도 부주방장으로 들어온 닉(아론 에커트)이 자신을 내몰고 주방장 자리를 꿰차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멜로드라마의 공식은 이 둘을 사회적 라이벌에서 연인으로 만드는 데 익숙하다. 그리고 여기엔 향기가 스크린을 넘어 전해질 듯한 멋진 음식들이 한 몫 거들고 있다. 는 최고의 자리에서 일하는 여성이라는 소재에서 와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지만, 그 영화만큼 현실적이고도 냉정한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