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도시 ‘고담’에서 검은 망토를 휘두르는 이 백만장자는 모든 범죄의 원흉을 잡아들일 기세로 움직인다. 도시를 구원하고자 하는 그의 신념은 때로 범죄자를 거둬들이는 행위 자체에 경도된 것처럼도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싸움의 끝이 영원히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의 마지막에서 고든 경감은 배트맨에게 쫓는 자들(배트맨)과 쫓기는 자들(범죄자)의 힘의 균형은 서로 경쟁하듯 커져만 갈 것이라는 뉘앙스의 대사를 읊는다. 그것은 악당이 있는 한 배트맨은 움직이고, 배트맨의 망토가 펄럭이는 사이 악당들은 다시금 그를 필요로 하는 범죄를 실행에 옮길 거라는 암시다. 이 두 존재는 서로 없애야 하는 대상에서 결국 공생하는 관계가 된다. 브루스 웨인이 헛된 이상을 꿈꾸는 망상가가 아니라면 도시를 정화..
스크린을 통한 현실의 대리만족과 강렬한 액션 속 아드레날린의 분출. 단 이 두 문구로 영화 는 설명될 수 있다. 스트레스 속에 꼼짝없이 갇힌 채 살아가는 주인공 웨슬리(제임스 맥어보이)는 어느 순간 놀라운 능력을 갖춘 암살자의 본능을 깨우친다. 그것은 껍질을 깨고 나와 새로운 세상을 마주한 새처럼 그 자체로 두 번째 탄생이라 할 만하다. 자신의 밥줄을 쥐고 있기에 한마디도 반박할 수 없었던 짜증나는 직장 상사에게 과감히 가운데 손가락을 날리고, 자신의 여자친구와 몰래 즐기면서 앞에서는 친한 친구 행세를 하는 역겨운 직장동료에게 회심의 펀치를 날리는 웨슬리. 인정하긴 싫어도 비유적으로든 사실 그대로든 현실의 내 모습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던 영화 속 나약한 인간이 이젠 앞뒤 가릴 것도 없는 마초로 다시 태어..
평범한 초등학생 코이치의 엄마는 아들이 고이 모셔 가져온 이 이상한 물체를 보고 기겁을 한다. 징그럽다며 손사래를 친다. 깨진 바위틈에서 코이치가 뿌려주는 수돗물로 몸을 축이며 생기를 회복한 한 마리 괴생물체는 이렇게 긴 잠에서 깨어난다. 에도 시대에 태어나 지진으로 흙 속에 갇혀 긴 시간을 숨죽인 채 기다려온 갓파. 코이치는 나름대로 귀엽게 생긴 이 생명체에게 ‘쿠우’라는 이름을 붙인다. 쿠우는 생명의 은인 코이치, 갓파의 출현에 흥분해버린 아버지, 징그럽다면서도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먹이를 날라다 주는 엄마, 그리고 한창 귀여움을 독차지해야 할 나이에 어디서 굴러온 지도 모르는 못생긴 요괴에게 자리를 빼앗겨 심통이 나버린 여동생 히토미 들과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이들 앞에는 과연 어떤 일들이 ..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샤말란의 영화 속 반전에 대한 강박은 이제 관객의 몫이 되어버렸다. 감독은 이미 영화의 내용을 통째로 뒤흔들 반전 따위, 자신의 호주머니 속에서 꺼내버렸는지 모른다. 은 샤말란이 오랜만에 호되게 뒤통수를 가격해주리라 기대한 관객들에게 기대 이하의 결과물임이 분명하다. 이 영화는 충격적인 반전 같은 것은 품고 있지 않으니까. 다만 언제나 그렇듯 에도 초현실적인 현상에 대한 감독의 관심사가 표면화되어 있고, 별다른 공포장치 없이도 관객을 숨죽이게 만드는 그의 탁월한 연출력이 살아있다. 샤말란의 영화를 반전의 유무(혹은 그 강도)로만 평가하는 것은 결국 충족되지 않은 기대감에 실망만 느낄 관객의 손해로 고스란히 돌아올 뿐이다. 환경재앙에 대한 일종의 경고로도 읽힐 수..
당신에겐 딸이 있다. 비록 이혼 후 돈 많은 남자와 재혼한 전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지만. 벌써 다 큰 처녀처럼 보여도 당신에겐 여전히 어려 보이는 이 딸 녀석이 한 눈에 봐도 놀기 좋아하는 친구를 대동하고 유럽엘 놀러 간단다.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그 유럽엘! 그래도 마음 넓은 아버지인 당신은 도착 즉시 전화한다는 조건하에 딸의 여행을 허락한다. 그러나 아뿔싸, 이 위험하고도 위험한 유럽은 당신의 딸을 가만 놔두지 않는다. 악랄한 인신매매 집단에 의해 납치당한 당신의 딸. 당신이라면 어쩌겠는가? 여기에 당신이 과거 각종 생존기술과 살인에 능한 특수집단에 속해 있었다면? 당신은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들은 이미 ‘지옥행 특급열차’를 타버렸다고! 온화한 표정의 리암 니슨은 가까이 할 수 없는 ..
이 아니메 오타쿠 형제가 진짜 하고 싶었던 얘기는 결국 레이싱에 있어서 따라올 자가 없는 한 소년의 고군분투 승리담, 또는 레이싱 트랙만큼 짧고 강렬한 성장기였다. 의도했든 안 했든 수많은 철학적 담론들을 배출해 낸 1편을 부담스럽게 감싸느라 속이 울렁거렸던(그러나 어쨌든 호감은 여전한) 전작 트릴로지에 비해 가 담백하고 기분 좋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감독(들)의 진심이 관객(적어도 나 같은)에게 전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의 지나치리만치 단순한 이야기구조와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감독의 경건한(!) 태도가 표출된 화려한 미장센은, 철학적 배경을 빌려 펼쳐놓았던 영웅담에 비해 몸무게가 훨씬 가볍다. 원작과의 관계를 멀리 놓고 보더라도, 두 워쇼스키의 의도는 아니메의 완전한 실사화라기 보다 두 장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