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포함 데이빗 크로넨버그는 마치 자신의 영화 속 인물들의 불길한 운명을 주조해내는 괴팍한 조물주처럼 보인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관통하는 숨쉬기 힘들만큼 답답하고 기괴한 세계관 속에서 주인공들은 자신의 신체와 정신에 가해지는 무거운 압력을 견뎌내야 한다. 때로는 지켜보고 있는 관객으로서의 행위 자체가 호기심과 괴로움, 이 양 갈래의 감정 사이 어디쯤에 존재하는 것인지조차 잊을 때가 있다. 혹은 스크린 밖의 자신이 다행히도 크로넨버그가 만든 이 숨막히는 세계에 편입되어 있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있다거나. 영국을 근거지로 한 러시아 마피아의 이야기를 그린 도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초현실적인 배경은 등장하지 않은 채 사실적인 공간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서술된다는 점이 그의 그로테스크했던 몇몇 ..
방 안엔 함께 하룻밤을 보내고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여자와 먼저 일어나 담배를 물고 있는 남자가 보인다. 아이들을 데리고 식당에 온 아빠는 두 딸과 귀여운 실랑이를 벌인다. 한 여자가 상처를 치유하는 어느 모임에서 딸의 출생과 남편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십자가가 걸린 교회에서 한 사나이가 세상에 불만 가득한 얼굴의 다른 젊은이를 교화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남자가 옆 침대에서 죽어가고 있는 환자들을 쳐다본다. 그는 죽음을 상상한다. 낙태를 경험한 듯한 여인이 남편의 아이를 가지기 위해 의사와 상담 중이다. 서로 무슨 관계에 놓여있는지 알 수 없는 이 등장인물들은 영화 안에서 서로 다른 공간과 시간에 흩어져있다. 은 매우 불친절한 영화다. 이 영화는 시간의 순서를 따라 사건을 배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