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 ‘허세’라는 말이 유행인가보다. 사전적 의미로 ‘실상이 없는 기세’를 일컫는다. 겉으론 강한 척, 무언가 있는 척 하지만 알고 보면 아무것도 없는 상태란 얘기다. 의 강재(최민식)가 그런 인간이다. 조직동기는 벌써 보스가 되었는데 그는 업소 ‘삐끼’와 ‘웨이터’ 사이에서 선택할 권리도 부여 받지 못한 말단 조직원이다. 겉으론 의리와 충심 빼면 시체라는 이 세계에서 까마득한 후배들에게조차 인사를 받지 못하고 사채 빚 독촉협박작업에 함께 따라갔다가 방해만 된다며 ‘쿠사리’만 듣는다. 유일하게 그가 머물 자리였던 비디오 대여점은 구치소를 며칠 갔다 온 사이 다른 후배놈이 꿰찼다. 말이 조직원이지 나이만 먹었을 뿐 어디에서도 반기지 않는다. 그래서 강재는 더욱 허세를 부린다. 안이 빌수록 나이를 들먹이고..
하긴 새삼스레 (이하 )의 매력 없는 스토리를 부여잡고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것도 조금 생뚱맞은 일이 될 것이다. 잘 생각해보면 김지운의 전작들이 엄청난 흡인력을 가진 줄거리를 보여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나는 그의 영화를 좋아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무국적에 가까운 영화 속 분위기에 매혹되었기 때문이지 결코 놀라운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니다. 웃음 속에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의 산장, 현실과 격리된 듯 환상의 이미지를 품고 있는 의 별장, 의 차갑고 세련된 도시의 밤거리. 김지운 영화의 세계는 이들이 관객을 끌어들이는 힘으로만 본다면 꼭 판타지를 그리지 않더라도 영화가 굳이 현실의 충실한 반영이 될 필요는 없음을 증명한다. 그가 그려내는 세상은 어느 곳, 어느 지점이라고 꼭 집어 말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