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파쿠와 여름방학을 / 河童のクゥと夏休み

평범한 초등학생 코이치의 엄마는 아들이 고이 모셔 가져온 이 이상한 물체를 보고 기겁을 한다. 징그럽다며 손사래를 친다. 깨진 바위틈에서 코이치가 뿌려주는 수돗물로 몸을 축이며 생기를 회복한 한 마리 괴생물체는 이렇게 긴 잠에서 깨어난다. 에도 시대에 태어나 지진으로 흙 속에 갇혀 긴 시간을 숨죽인 채 기다려온 갓파. 코이치는 나름대로 귀엽게 생긴 이 생명체에게 ‘쿠우’라는 이름을 붙인다.

 

 

쿠우는 생명의 은인 코이치, 갓파의 출현에 흥분해버린 아버지, 징그럽다면서도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먹이를 날라다 주는 엄마, 그리고 한창 귀여움을 독차지해야 할 나이에 어디서 굴러온 지도 모르는 못생긴 요괴에게 자리를 빼앗겨 심통이 나버린 여동생 히토미 들과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이들 앞에는 과연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얼핏 서서히 잊혀져 가는 동심을 건드려 줄 것만 같은 <갓파쿠와 여름방학을>은 소박하지만 사랑스럽게 연출된 장면장면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여느 집처럼 조용한 한 가정에 일본의 전래 요괴인 갓파가 끼어듦으로써 벌어지는 해프닝들은 한 순간의 박장대소보다 은근한 미소를 자아낸다. 이를테면 기력을 되찾아 코이치네 가족을 떠나려는 쿠우를 밖은 위험하다며 극구 말리는 아버지와 코이치의 얼굴엔 누가 어른이고 누가 아이인지 모를 천진한 심각함이 묻어난다. 더구나 쿠우의 머리의 물이 말랐으니(갓파는 머리의 물이 마르면 힘을 못 쓴다고 한다) 어서 수돗물이 아닌 미네랄 워터를 뿌려주라는 아버지의 다급함은 이미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버린 어른의 순수함 그 자체다. 여기에 굴러온 돌에 뽑혀버린 박힌 돌 처지의 히토미가 사사건건 쿠우와 대립하는 장면에서는 그 또래 아이들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한 듯 어린아이의 귀여운 시기와 질투가 잘 그려져 있다.


그러나 <갓파쿠와 여름방학을>은 비단 귀여운 생물체를 이용해 억지로 동심을 끌어내려는 애니메이션만은 아니다. 이 한 편의 애니메이션 안에는 이슈에 대한 집착으로 대상을 파괴하는 언론의 천한 본성, 인간사회 외의 환경에는 좀처럼 눈을 돌리지 않으려는 인간의 협소한 시각, 아이들의 성장과정에서 끊이지 않고 발생되는 이지메 현상에 이르기까지, 결코 가볍지 않은 사회문제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갓파쿠와 여름방학을>은 현대로 불려온 갓파의 눈을 통해 우리 스스로의 모습을 되돌아 볼 기회를 제공한다. 이쯤에서 현대인들이 느끼는 소외와 우리가 행하는 환경파괴의 심각성을 에둘러 말하기 위해 변신 너구리들을 총출연시켰던 다카하타 이사오의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이 떠올려진다. 두 작품은 현실과의 적당한 타협 안에서 마음 한 곳이 자근자근 저려오게 만드는 엔딩마저도 서로 공유하는 듯 하다. 애니메이션 치고 조금 긴 두 시간여의 러닝타임이 결코 지루하지 않은(혹자는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갓파쿠와 여름방학을>은 동심으로부터 출발된 꿈을 통해 결국 우리네 현실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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