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티드 / Wanted

스크린을 통한 현실의 대리만족과 강렬한 액션 속 아드레날린의 분출. 단 이 두 문구로 영화 <원티드>는 설명될 수 있다. 스트레스 속에 꼼짝없이 갇힌 채 살아가는 주인공 웨슬리(제임스 맥어보이)는 어느 순간 놀라운 능력을 갖춘 암살자의 본능을 깨우친다. 그것은 껍질을 깨고 나와 새로운 세상을 마주한 새처럼 그 자체로 두 번째 탄생이라 할 만하다. 자신의 밥줄을 쥐고 있기에 한마디도 반박할 수 없었던 짜증나는 직장 상사에게 과감히 가운데 손가락을 날리고, 자신의 여자친구와 몰래 즐기면서 앞에서는 친한 친구 행세를 하는 역겨운 직장동료에게 회심의 펀치를 날리는 웨슬리. 인정하긴 싫어도 비유적으로든 사실 그대로든 현실의 내 모습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던 영화 속 나약한 인간이 이젠 앞뒤 가릴 것도 없는 마초로 다시 태어난다. 이거 참 통쾌하다.


꿈 속의 여신 그 자체인 안젤리나 졸리의 환상적인 입술과 숨 넘어가는 뒷태를 감상할 수 있다는 점도 <원티드>의 또 다른 유혹요소다. 게다가 남자를 거칠게 다뤄주기까지! 졸리가 연기하는 폭스의 손아귀에서 하루하루 커가는 웨슬리에게 감정이입 당하고픈 관객들은 얼마든지 있다. 주인공이 의자에 묶인 채 주먹세례를 받거나 정육점 고기 사이사이에서 튀어나오는 칼끝에 살을 베이는 고통을 감수하는 이유 또한 더욱 명확해진다. 비록 영화는 갑갑한 현실을 뒤로 하고 폼 나는 암살자로 다시 태어나려는 주인공의 의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긴 하지만. 어쨌든 나약했던 웨슬리는 폭스의 도움으로 날마다 자라난다. 그 동안 관객은 현실을 잊고 잠재된 능력을 깨우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대리만족을 느낀다. 하루 아침에 달라져버린 주인공의 존재감이 어째 좀 황당하긴 하지만, 기계의 배터리로 살아가다 재림한 메시아로 다시 태어난 네오의 입장에 비하면 소박하다.

 


중요한 것은 총알을 휘게 하여 장애물 너머의 목표물에 맞히는 등장인물들의 황당한 능력에 비하면 이 거짓말 같은 영화의 줄거리에 대한 관객의 동화는 쉽게 설명될 수 있을 정도라는 것. 만화 같은 상상력(어차피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삼고 있으니까)으로 점철된 <원티드>는 시간과 공간을 주무르는 특수효과와 연출로 이 암살자들의 행위에 속도를 더한다. 여기엔 물리적 법칙, 논리적 설명이 필요 없다. 네오와 그 일당이 그랬던 것처럼 주인공들의 손아귀 안에서 공간은 뒤틀리고 시간은 확장된다. <원티드>는 액션을 묘사하는 데 소비되는 시각적 효과에 초점을 맞춘다. 여기에 더해 영화는 애초부터 성인관객을 염두에 둔 듯한 액션장면들로 넘쳐난다.


단 여기서 끝이다. 액션영화에서 스트레스에 찌든 관객의 심장을 관통하는 시원시원한 액션장면들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하느냐 묻는다면 적당한 대답은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총알이 휘고 머리가 터져나가고 아크로바틱 자세로 각종 액션을 소화하는 배우들의 모습을 러닝타임 내내 보고 있자니 이미 이런 장면들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우리의 뇌가 더 이상 이런 자극에 동요되지 않음을 알려올 따름이다. 웨슬리보다 조금 일찍 현실의 쳇바퀴를 탈출해 영웅으로 태어났던 인생선배 네오가 그 스타일 넘치는 모습과 함께 보는 이에게 머리 굴릴 시간을 벌어줌으로써 영화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만들었다면 이 후배의 휘황찬란한 활약은 그저 고소한 팝콘과 함께 증발해 버리고 만다. 칼자국과 총알구멍이 화면을 화려하게 수놓는 <원티드>는 자극의 면역에 대한 더 큰 자극이라는 전략을 우회해서 풀어갈 생각이 없어 보인다. <원티드> 그저 영화의 상영시간만큼만 충실히 소비된다. 다만 두 시간이 채 안 되는 그 짧은 러닝타임마저 어째 좀 길게 느껴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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