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70

이런 표현이 허락된다면 최호의 <고고70>은 <후아유>와 <사생결단>의 중간 어디쯤에 서있는 존재 같다. 풋풋한 설익음과 화면을 꽉 채우는 농익음이 적당히 섞여있는. <고고70>에서 음악과 밴드가 다뤄지는 일면은 <후아유>에서 느꼈던 결코 기분 나쁘지 않은 생생한 치기와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연상하게 하고, 한편 시대의 무거운 공기를 나름의 방식으로 호흡하는 모습은 <사생결단>과 맞닿아있는 듯 보인다. 다만 <고고70>이 당시를 바라보는 눈은 <사생결단>의 과중한 시선에 비하면 아이러니와 유머로 포장되어 있어 오히려 그 무게를 쉬이 가늠하기 어렵게 할 뿐이다.

 


로큰롤과 솔이 영화를 지배한다. 연기를 연습한 실제 뮤지션들과 악기를 연습한 직업배우들이 서로 맞추는 연주호흡은 기대이상이다. 영화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클럽이 된 느낌이다. 물론 공연을 연출하는 장면에서 다소 인위적인 부분들도 눈에 띄긴 하지만, <고고70>이 밴드의 연주와 공연을 보여주는 방식은 지금껏 우리나라에서 제작되었던 음악소재의 영화들과 비교해볼 때 하나의 쾌거라고 생각해도 좋을 정도다.

 

 

이렇게 <고고70>은 무엇보다 음악이 전면에 나서는 영화지만 동시에 시대를 조망하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온 나라가 각하의 충실한 수족이 되어 새마을을 만들어가는 동시에 지도자 한 사람의 취향과 비위를 맞춰가야 한다. 대중문화를 통해 젊은이들의 에너지가 건전한 형태로 마음껏 분출되어야 하는 시기에 얼토당토않은 이유가 적힌 자물쇠로 그 배출구를 잠가버리는 것은 시대전체의 요구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윤리적 실천의 문제도 아니었다. 오로지 각하의 입맛 때문에 벌어지는 이 상황은 지금에 와서 멀리 떨어진 눈으로 보자면 하나의 코미디가 된다. 일본엔카와 고급요정에 심취하신 어르신께선 젊은이들이 로큰롤에 열광하는 꼴을 못마땅해하셨다. 아니면 그저 덩어리를 이룬 채 공연장에 모여 한 목소리를 외치는 젊은 열기들이 두려우셨을까.

극중에서 데블스를 키우는 팝칼럼니스트 이병욱(이성민)은 유신으로 대중문화계가 얼어붙기 시작할 시기, 정부로부터 금지곡을 골라내라는 명령을 받는다. 각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퇴폐적’인 대중문화 목록에 빨간 줄을 긋는 것은 곧 나라를 위한 일이 된다. 한 사람이 국가와 동일시되길 간절히 바랐던 이 시기를 <고고70>은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드러머 동근(손경호)이 ‘빠따’ 몇 대 맞고 동료를 불어버린 사실을 운동권 학생들의 끈질긴 의리와 비교하는 장면이 우스우면서도 더욱 씁쓸해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는 이 희극 같은 시기를 부유하는 데블스를 이용해 그 잿빛 공기의 실질적 핵심을 보여주려 하진 않는다. 이 작은 솔 밴드는 수많은 젊은이들을 열정적 흥분에 빠뜨릴 정도로 위력적이지만 동시에 위압적인 권력개체에 쉽게 굴복할 정도로 나약한 존재들이기도 하다. 데블스는 한편으로 당시 권력의 힘에 눌려 조용히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보통 사람들과 다름없었다.

<후아유>에서 두 주인공의 조심스런 사랑을 배경에서 지원해주던 밴드음악들은 <고고70>에서 전면을 향해 돌출한다. 현역 뮤지션들과 연습을 통해 악기를 익힌 직업배우들이 뒤섞여 있는 데블스의 모습에서 어떤 위화감도 느껴지지 않는 것은 다시 말하지만 이 영화가 이룩한 하나의 성취다. 뮤지션들은 배우로서, 배우들은 뮤지션으로서 서로 자연스럽게 융합한다. 여기에 실제 악기 연주와 생생한 공연장면이 클럽의 들뜬 분위기를 그대로 전해준다. 데블스가 노래하는 솔, 로큰롤의 명곡들은 굳이 해당 장르의 팬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게 연주된다.

 

 

실은 굉장히 무거웠던 당시의 시대상을 회상하는 영화의 시선이 결코 심각해 보이지 않는 것은 이런 데블스의 음악 덕분이기도 하다. 물론 <고고70>이 의도적으로 이 시기를 희화한 측면도 있다. 특히 동시대 음악계 아이콘들을 적절히 짜깁기 한 이병욱의 캐릭터가 빛을 발하면서부터 어이없는 시대의 아이러니를 더욱 부각시킨다. 무척 신나고 아주 웃기지만 꽤 씁쓸한 뒷맛. 혹은 숨막히는 시대 속에서 신나게 놀기. 어떤 면으로 봐도 밍밍하지 않은 <고고70>은 그래서 더욱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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