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 - The Great Seotaiji Symphony (2009)

서태지를 향한 록매니아들의 지나친 경계심은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 취향의 차이 때문이라고 쉽게 얘기하고 싶지만 사실은 그렇지만은 아닌 듯하다.

수많은 소녀들(이제는 숙녀들이라고 해야 하나)로 이루어진 팬덤이나 언제나 소년 같은 그 목소리와 외모, 그리고 매 앨범 다른 색깔을 입히는 그 장르적 다양성 등, 서태지는 이른바 마초의 전유물로 상징되는, 그래서 마초를 동경하는 소년들의 한결 같은 우상이 되어온 여타 록밴드들과는 그 풍기는 냄새나 음악의 구성성분에서부터 차이가 있다. 기타가 내뿜는 굉음과 심장을 두드리는 베이스드럼이 아드레날린을 분출시키는 이 음악장르씬에서 스타일 넘치고 예쁘장한(!) 서태지의 음악과 외모가 그들의 심기를 묘하게 건드렸다고 본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서태지는 록을 연주하는 아이돌이다. 그러나 그는 여타 아이돌과 같이 대형기획사에 의해 공장제 생산품처럼 획일적으로 찍어낸 음악을 들려주지 않는다. 그는 데뷔시절부터 이미 음악적 자립성을 획득했다. 팬덤을 활용한 적중률 높은 마케팅 전략과 더불어 서태지를 흥미롭게 만드는 요인은 무엇보다 그가 만들어내고 들려주는 음악에 있다.

장르를 종횡으로 오고 가는 그의 다양한 취향은 간혹 아티스트로서의 그의 입지를 흐리게 만들곤 하지만 그의 음악은 항시 일정 수준 이상의 완성도를 이룩해 내왔다. 영미권 록씬의 메인스트림을 자신만의 것으로 독특하게 흡수하는 그 동물적 감각은 그를 비록 완전한 창조자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훌륭한 전달자로는 인정할 수 있게 해준다.

서태지의 음악 자체가 별볼일 없거나 아티스트 자체를 싫다고 느낀다면 달리 할 말은 없지만 그를 지나치게 신격화하는 그 팬문화에 대한 거부감만으로 그를 멀리하는 이가 있다면 한마디 해주고 싶다. 서태지는 선입견으로 가벼이 흘려버리기엔 아까운 훌륭한 아티스트다. 그가 들려주는 음악이 서구의 것의 재탕이라 하더라도 그는 여기에 자신만의 색깔을 입히는 데 성공해왔다. 음악을 한번 듣는 것만으로 그 작품을 누가 만들어 낸 것이라 단번에 알아챌 수 있게 만드는 뮤지션은 점점 드물어진다. 서태지는 그의 음악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는다.

이번엔 그가 지휘자 톨가 카쉬프(Tolga Kaşif)와 함께한 [The Great Seotaiji Symphony]가 발표됐다. 그의 히트곡들에 오케스트라 연주가 입혀졌다.

서태지
The Great Seotaiji Symphony

CD 1
01. Take One Prologue
02. Take One
03. Take Two
04. F.M Business
05. 인터넷 전쟁
06. Moai
07. 죽음의 늪

CD 2
01. T'ik T'ak Fantasia
02. T'ik T'ak
03. Heffy End
04. 시대유감
05. 영원
06. 교실이데아
07. Come Back Home
08. 난 알아요 Adagio
09. 난 알아요


[The Great Seotaiji Symphony]를 영미권이 주도하는 팝음악의 역사에 비춰본다면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시도일 것이다. 메탈리카나 키스 등 대형 록밴드들이 클래식의 구성악기와 협연한 예는 이미 수없이 많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은 관현악이 록음악에 웅장한 느낌을 더하는 단순한 배경음악으로 전락한 예가 되거나, 클래식 연주자들에 대한 록 연주자들의 무언의 열등감을 전복하는 계기에 그친 것이 사실이다. 아티스트 스스로에겐 하나의 위대한 도전이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팬들에겐 재미있는 한번의 시도 이상의 의미로 다가오진 않는다.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후 발표한 첫 솔로앨범의 곡들로부터 앨범은 시작된다. 가장 독창적이었던 이 앨범에서 ‘Take One’과 ‘Take Two’가 발췌됐다. 느릿한 그루브가 지배하는 ‘Take One’은 오케스트라의 스트링 사운드와 잘 어울린다.

관현악의 사운드가 덧입혀진 ‘Take One’과 ‘죽음의 늪’, 그리고 ‘T’ik T’ak’, ‘시대유감’은 새롭게 들린다. 이 트랙들은 오케스트라의 협연이 잘못된 시도가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예들이다. 그러나 이들 트랙을 제외한 기타 곡들에서 이 앨범의 결과가 값진 것이었음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서태지의 베스트 트랙들의 배경음악으로 기능하는 오케스트라는 ‘Take One Prologue’, ‘T’ik T’ak Fantasia’, ‘난 알아요 Adagio’ 등에서 그 존재감을 알리려고 노력하지만 이는 별개 트랙들로 서태지의 음악과 효과적으로 공명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교실이데아’의 길게 늘어진 인트로는 지루할 정도다. (그러나 곡 자체는 비트를 중심으로 멋지게 연주된다)

가요사에 있어 이 앨범이 기억될만한 시도임은 인정해줘야 한다. 그러나 결과물은 생각보다 무미건조하다. 그럼에도 나는 그를 계속해서 주목한다. 가요계의 판도를 바꿔버린 몇 안 되는 파이오니어였던 그는, 여전히 가요계의 유행과는 상관없이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펼쳐나갈 수 있는 드문 아티스트 중 하나이다. [The Great Seotaiji Symphony]는 그의 디스코그래피 중간 즈음에 흥미로운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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