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노 다케시의 생각노트 (기타노 다케시)


누군가를 엿본다는 것은 대개 지루함과는 거리가 먼 행위다. 아마도 인간의 무의식 어딘가에 타인에 대한 호기심이라는 영역이 깊숙이 잠재하고 있으리라. 더욱이 그 대상이 무척 흥미롭거나 신비로울 때 그 호기심의 세기는 훨씬 커진다. 그래서 우리는 일견 고리타분하게 여기면서도 때가 되면 어김없이 명사의 자서전, 에세이류를 찾거나 말초적인 자극 말고는 얻을 게 없다는 걸 앎에도 연예인의 가십기사를 둘러보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숱한 소설 속 가상의 세계에도 질려 버리고 사회과학서적류에 적혀있는 이념들에 머리가 아픈 독자들이 호기심의 덫에 걸려드는 순간이다.

<기타노 다케시의 생각노트>(이하 <생각노트>)는 일본이 자랑하는 영화감독이자 코미디언 기타노 다케시의 짧은 에세이들을 모은 책이다. 그에게 호기심을 가진 이라면 살짝 엿볼 만 하다.

이른바 자서전, 에세이류의 책을 읽을 때, 그 글의 매끄러운 정도를 가늠해 보면 그것이 누군가의 대필을 거쳤는지 아니면 철저히 본인에 의해 작성된 것인지 알 수 있는 경우가 있다. 물론 글쓰기가 생업인 사람들이라면 직업적인 글쓰기와 자신을 드러내는 글쓰기간의 간격이 크지 않을 테지만, 대개는 여러 분야를 고르게, 그것도 높은 수준으로 잘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어떤 책들은 아무리 초라한 에피소드라도 때깔 좋게 윤색해내는 글 전문가를 모시고 만들었음이 분명한 소설 같은 냄새를 풍긴다. 마치 동네 하천에서 개구리 잡는 장면을 태평양 심해 괴생물체와의 혈투처럼 그려내는 CG 문장들.



그런 의미에서 <생각노트>는 완전히 기타노 다케시에 의해 적혀진 책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단락단락이 무척 거칠고 솔직하다. 잘 알려진 사람으로서 가질 수 있는 무의식의 방어선 같은 것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이를테면 가급적 고급 어휘를 사용하고, 우아한 수식어 등으로 문장을 장황하게 만들거나, 정치적 올바름을 표출해 내기 위해 위선의 표정을 짓는 일련의 행동들을 이 책에선 찾을 수 없다. <생각노트>에 적힌 기타노 다케시의 문장들은 마치 갓 썰어낸 사시미 조각처럼 날것이다.

책 속 화자는 두 사람이다. 한 명은 주인공 기타노 다케시, 다른 한 명은 요리사 구마다. 가상의 인물일 것 같은 (그러나 책의 말머리에 실존인물임을 밝히고 있는) 구마씨는 기타노 다케시의 매력에 푹 빠져있다. 각 챕터의 시작을 알리는 구마의 머리글엔 그를 향한 열렬한 존경의 감정이 담겨있다. 때론 그것이 자신의 군주를 충성스레 모시는 사무라이의 태도 같아 불편하기도 하다.

하지만 실제 있었던 듯한 그 에피소드 속 기타노 다케시는 내가 상상하는 기타노 다케시와 왠지 잘 맞는다. 프랑스에서 일본까지 날아온 팬들과 가라오케에서 친구처럼 어울리며 그들에게 진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거나, 단골 구마씨의 가게에서 뜬금없는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다거나, 왕년의 만담 라이벌의 뒤늦은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하면서도 자신만 일찍 성공한 것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기타노 다케시. 거기엔 아이처럼 엉뚱하고 지나치게 정직한, 어떤 마초가 살아있다. <생각노트>를 들여다보면 그의 영화 속 캐릭터와 그들의 행동이 어디로부터 유래된 것인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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