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미학 양 분야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큰 인지도를 얻고 있는 두 저자, 정재승과 진중권이 "크로스!"를 외쳤다. 혹시 영화 를 보고 '삘' 받아 서로의 몸을 해체, 결합 해보려는 시도가 아니냐고? 그랬다면 더욱 흥미로웠겠지만 아쉽게도 (이하)는 이들이 의기투합해 쓴 책의 제목일 뿐이다. 제목만 듣고 잠시나마 물리법칙의 혁신과 생명공학의 진보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내가 어리석었다. 그러나 이 부러운 두 두뇌의 결합만은 얼마간 이뤄진 셈이다. 는 시대를 대표하는 스물 한 개의 아이콘을 바라보는 두 저자의 시각을 번갈아 기록하고 있다. 이 기호들은 주로 각 저자의 주 활동무대, 즉 과학과 미학이라는 배경 안에서 분류돼 서술되고 있지만 때론 서로의 영역이 교차되기도 한다("크로스!"). ..
영화를 보고 난 후의 그 느낌을 간직하려고 이 작은 공간에 뭔가를 끼적거리는 순간엔 항상 자신의 고갈된 상상력과 마주하곤 한다. 내가 쓰는 글은 기본적으로 단 두 종류의 술어, 즉 ‘재미있다’, ‘재미없다’로부터 출발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것을 좀 더 길게 늘려 쓰는 과정에서 영화가 재미있는 원인을 찾아보거나 또는 지루했던 까닭을 덧붙이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각각의 영화가 던져주는 소재의 상이함은 달라도 거의 모든 글이 비슷한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이러이러해 좋았더라.’ 혹은 ‘그리하여 나빴더라.’ 상상력의 빈곤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겠다. 좀 더 색다른 글, 영화에 대한 좋고 싫음의 주관적 판단 외에 그 안에서 다른 의미를 끄집어 내는 글을 써보고 싶지만 언제나 능력의 한계에 부딪힌다. 같은..
진중권의 글은 대단히 명료하다. 그는 애매한 표현법, 불필요한 미사여구 등을 사용해, 독자의 판단력을 순간적으로 흐려놓아 (사실은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독자자신의 무지를 탓하게 하거나, 내용이 아닌 다른 요소들로 저자에 대한 환상을 심어놓지 않는다. 진중권의 책은 그것을 읽는 이에게 글쓴이가 전하고 싶은 내용만 오롯이 전달해준다. 다만 그의 글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 덧붙여지는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유머다. 군더더기 없는 명확한 표현과 촌철살인의 유머로 똘똘 뭉쳐진 진중권의 글쓰기는 정말이지 유혹적이다. 그것은 쉽게 읽히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다. 그의 책들은 주제와 소재 면에서 대개 두 갈래로 나뉜다. 한 쪽은 그의 전공을 살려 쓴 미학 관련 책들, 다른 한 쪽은 정치, 경제, 문화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