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로이트 메탈 시티 / デトロイト・メタル・シティ

싱그러운 팝밴드를 꿈꾸며 도쿄로 상경한 순수청년 네기시 소이치. 그러나 대학 졸업 후 그가 몸담게 된 밴드는 어찌된 일인지 과격한 사운드 위에 죽음과 섹스를 부르짖는 데쓰메탈 밴드,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DMC)다. 네기시는 DMC의 프론트맨 크라우저 2세로, 무대 위에서의 카리스마 넘치는 퍼포먼스를 통해 이미 열혈 추종자들을 거느린 인디씬의 스타가 되었다. 여전히 팝밴드를 향한 꿈만은 포기하지 않은 네기시지만 천재적인 무대매너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타연주, 그리고 데쓰메탈과 DMC에 미쳐있는 기획사의 여사장 덕분에 그의 희망이 쉽지는 않아 보인다. 더구나 학창시절 좋아했던 아이카와와의 재회는 그가 처한 상황을 더욱 곤란하게 만든다. 비슷한 음악취향으로 인해 가까운 사이가 되었던 그녀에게 자신이 악마의 사주를 받는 메탈 뮤지션이라 밝힐 수는 없는 법. 과연 소심한 네기시군은 음악과 사랑의 꿈을 동시에 이룰 수 있을까.


와카스기 기미노리의 동명만화를 원작으로 한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는 빠른 호흡의 대사들이 쉴 틈을 주지 않고 터져 나오는 전형적인 일본식 개그만화다. 10여분이라는 짧은 시간의 하나의 에피소드 안에 촌철살인의 대사와 뒤통수를 때리는 반전들이 쉴새 없이 튀어나오며 웃음을 유발한다. 주인공 네기시는 본래 심약하고 순수한 청년으로 애니메이션은 왜 이런 그가 DMC에 가입했는지 묻지도 않은 채 시간을 건너 뛰지만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에서 이러한 사건의 인과관계는 전혀 중요치 않다. 이 애니메이션은 데쓰메탈 밴드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그 소수를 위한 문화 안에서 발생하는 마니아적 요소를 희화화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 안 등장인물들의 엽기적이고 다소 충격적인 대사들은 마치 유재석이 ‘꽁트는 꽁트일 뿐 오해하지 말자’라고 말하듯, 온전한 정신을 가진 성인이라면 그것이 개그의 한 소재일 뿐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총 열두 개의 에피소드를 전체적으로 보면 인디씬의 스타 DMC가 결국엔 메이저로 가는 관문인데뷔앨범을 발표한다는 줄거리다. 그 과정에서 DMC 혹은 크라우저 2세는 힙합 MC나 여성 펑크밴드, 전설적인 메탈 뮤지션과도 대결을 펼치게 된다. 크라우저 2세인 네기시가 이 난관들을 극복하는 해결책의 절반은 본인의 임기응변과 무대 위에서부터 심어져 온 내면의 카리스마(크라우저 2세의 모습 그대로)이지만 그 나머지 절반은 철저히 운으로부터 비롯된다. 주인공의 위기탈출 장면은 때론 야기 노리히로의 <엔젤 전설>속 주인공 기타노 세이치로의 그것과 비슷해 보인다. 본인이 의도하지 않아도 적절한 우연성에 기대어 주인공의 명성에 흠집도 내지 않은 채 사건이 해결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돌출하는 일본만화 특유의 과장과 수사법이 보는 이를 배꼽 잡게 한다. 물론 DMC적 취향에 동의한다는 전제하에.


네기시의 캐릭터는 한편으론 마치 이중자아를 자랑하기 바쁜 요즘의 수퍼히어로 같기도 하다. 이 섬세한 감수성의 소년은 자신의 성향과 정반대라고 생각되는 이 괴기, 엽기 밴드를 떠나고 싶어하지만 때로는 무대 밖으로도 크라우저 2세의 성격을 고스란히 가져오면서 그것이 자신의 또 다른 자아임을 드러낸다. 불가능이 없어 보이는 크라우저 2세가 현실에 모습을 드러내면 우연이든 필연이든 모든 어려운 문제들은 단번에 해결된다. 가령 자기 형이 그 밴드의 리더인지도 모른 채 DMC의 광신도가 된 네기시의 동생을 크라우저 2세의 모습으로 나타나 모범생으로 교화시킨다든지, DMC 팬들과 힙합 뮤지션 팬들과의 세력다툼이 크게 번질 위기에서 극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며 사건을 일단락 짓는 모습 등에선 위기에 빠진 주변사람들을 구하는 영웅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아니, 개그만화의 캐릭터에서 뭐가 그리 거창한 이미지를 끄집어 내느냐고? 당연하지! 난 이미 DMC, 아니 크라우저 2세가 전세계를 제패하기 위해 마계로부터 강림한 절대 악마라는 것을 믿게 되어 버렸으니까. 안 그래, 네기시군?




* 올해 영화로도 제작된 것 같은데 과연 애니메이션의 이 엽기적인 분위기를 이어나갔을지 궁금하다.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 영화버전에서 네기시와 대결하는 전설의 메탈 뮤지션은 바로 KISS의 진 시몬즈. 정말 궁금하다.

* KISS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라는 제목과 밴드명은 1976년 앨범 [Destroyer]를 통해 발표된 KISS의 노래 ‘Detroit Rock City’에 대한 명백한 오마주일 것이다. KISS와 DMC의 분장을 비교해 보라. 하긴 이들 외에도 화장하는 밴드들이 많긴 하지만.

* ‘Detroit Rock City’는 99년에 이미 영화제목으로 사용되었다. 에드워드 펄롱 주연의 영화로 KISS 또한 직접 출연한 영화란다. 물론 보진 못했다.

* ‘메탈’이냐 ‘메틀’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번엔 제목에 따라 ‘메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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