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집 (2007)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감정이 없는 인간과 만난다는 것은 그자체로 은근한 공포다. 굳이 싸이코패스같은 용어를 들먹이지 않아도 일상에서 감정 없는 사람들을 겪는다는 것이 얼마나 당혹스러울 지는 쉽게 상상이 간다. 인간의 특권과도 같은 감정을 우리의 몸에서 제거해 버리면, 남는 것은 기계와도 같은 차가운 두뇌뿐이다. 그것은 응당 사람에게서 풍겨 나와야 할 사람의 냄새가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예상되는 것의 부재는 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그것은 간혹 공포가 된다. 일본 소설(貴志祐介의 <黒い家>)을 원작으로 한 신태라의 <검은 집>은 그 공포의 극단을 보여주려 한다.


정념이 없는 것을 넘어 타인의 신체(자신의 신체도)를 마구 훼손하는 싸이코패스는, 영화에선 전준오(황정민)에 의해 일말의 동정의 여지가 남은 일종의 환자라고 조심스레 설명되지만, 한편으론 인간이기를 포기한 괴물이라 여겨지는 것도 사실이다. 싸이코패스의 범인은 <검은 집>에서 마치 프레디 크루거나 제이슨, 마이크 마이어 같은 초현실적인 악당의 역할을 할 뿐이며, 그런 괴물들과 동등하게 엄청난 완력과 두뇌를 부여받았다. 따라서 <검은 집>의 신이화(유선)에게 전준오가 남자로서의 완력을 행사하지 못한다고 이 영화를 타박하는 것은 되레 우스워 보인다. 신이화는 앞서 말한 악당들에 비해 보다 현실적이고 그럴듯한 대사를 할당 받았을 뿐, 그녀도 여전히 공포영화의 괴물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싸이코패스는 그럴듯한 현실성을 끌어들이기 위한 장치이지, 리얼리즘의 미학을 추구하기 위한 소재가 아니다. <검은 집>은 여느 호러물들이 그렇듯 무시무시한 괴물을 보유한 또 다른 공포영화일 뿐이다.

 


그러나 한 사람의 관객으로서 이 영화의 전체를 감싸는 숨 막히는 기운은 쉽사리 떨쳐지지 않는다. 시종일관 어둡고 차가운 톤의 화면과 쓸쓸하면서도 우아한 음악의 조화는 영화의 음침한 분위기와 너무도 잘 어울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일정 이상의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강신일과 유선, 그리고 황정민의 좌중을 압도하는 연기는, 복선의 정체가 뻔히 보이는 우려스런 솔직함과 뒤로 갈수록 엉키고 느슨해지는 <검은 집>의 플롯에도 불구하고, 공포영화로서의 매력을 놓치지 않게 해주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극한의 공포를 느끼길 기대했던 관객들에겐 아쉬울지 모르지만, <검은 집>은 이렇다 할 공포영화의 전통이 없는 한국에서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다.

* 이미지출처 Daum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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