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Legend / 나는 전설이다 (2007) - '그들' 사이에서 홀로 살아가기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자, 일단 원작을 각색한 데에 따른, 소설 <나는 전설이다>의 팬들의 적개심(?)은 내 감상의 영역이 아니다. 어차피 나는 원작을 읽지 못했고, 앞으로도 읽을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따라서 영화 <나는 전설이다>가 얼마나 원작을 훼손(과연 이 말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으나)했느냐와, 이 영화에 대한 나의 감상이 어떠하다는 설명 사이에는 사실 아무런 관계가 없다. 세간에는 이 영화를 두고 (당연히!) 여러 평가들이 오고 가지만, 한 사람의 관객으로서 내 감상은 온전히 영화 <나는 전설이다>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밝혀두고 싶다. 하긴 누가 상관하겠냐마는.


전작인 <콘스탄틴>을 ‘유래 없이 대자본이 투입된 금연 캠페인’ 영화로 완성해버린 프란시스 로렌스라면, 그의 차기작이자 윌 스미스를 원톱으로 내세운 <나는 전설이다>가 어떤 모양으로 만들어질지 적잖이 궁금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른바 ‘좀비영화’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풍기는 저 설정, 즉 황폐화된 도시와 전염의 메타포, 그리고 생존자들의 고립 등의 요소들이 모두 중첩되어 있는 이 영화에 대한 기대(나 스스로 이런 분위기의 영화는 모두 좋아하니까)가, 감독의 전작과 오버랩 되어 기대 이하의 작품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과 함께 떠오르면서 말이다.

 


아마도 상업영화로서 <나는 전설이다>가 가장 심혈을 기울였을 부분은 바로 그런 상황에 놓인 주인공이 느낄 긴장감을 관객에게 어떻게 전달하느냐는 부분이었을 것이다. 확실히 윌 스미스는 어딘가 심약하거나, 신경쇠약의 증세를 가진 캐릭터를 표현하기엔 너무나 밝은 이미지의 캐릭터다. 언제 어디에서 그 재간스런 유머를 터뜨릴지 모를 배우의 표정을 통해 도시의 위험천만함을 전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전설이다>가 조성하는 긴장감의 강도는 결코 약하지 않다.

인간적인 특성이 제거된 ‘흡혈귀’들의 움직임은 무척 빨라졌고, 공격적인 성향 또한 배가되었다. CG로 완성해낸 그들의 모습은 마치 같은 주인공을 공유하는 <아이, 로봇>의 로봇들을 연상케 한다. 인간의 신체적 능력을 뛰어넘은 이들의 움직임이 화면 곳곳을 수놓는 동안, 주인공 로버트 네빌과 그의 애견 샘은, 정서적 교감이 가능한 생명체라곤 그들 단 둘 뿐인 이 거대 도시에서 서로만을 바라볼 뿐이다. 살아남으려는 자들과 이유 없이 적대적인 괴생명체 사이에 생성되는 긴장감은, 가령 치료 백신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피로 여자 ‘흡혈귀’를 생포하는 네빌과 마찬가지 방법으로 그를 유인하는 ‘그들’의 ‘지능’을 화면으로 확인할 때 생겨난다. 벽의 어두운 빈 공간을 응시하는 네빌의 시선이 곧 관객의 시선이다. 빛과 어둠이 등장인물들의 활동 시간대를 구분 짓는 만큼, 영화가 이 요소들을 긴장감의 구축에 사용하고 있는 점은 당연하다.


여기에 대도시에서 완전히 고립된 네빌이 이어가는 기묘한 일상이 영화의 분위기를 이끌어간다. 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상점으로 들어가 필요한 영화를 고르거나, 그의 애견 샘과 함께 운동을 즐기거나, 정확한 시간에 맞춰 집안의 보안장치들을 하나 둘씩 설치해 나가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반복한다. 그의 일상에 부재한 것은, 적어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타인’이다. 네빌은 매일같이 끊어진 다리를 바라보며 날마다 라디오 전파를 송신한다. 그는 누구든 생존자가 있다면 자신에게 찾아올 것을 당부하며, 더 이상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도시 곳곳에 마네킨을 세워놓고 누군가를 갈구하는, 외로운 본인에 대한 자기암시처럼 들리기도 한다. 휑한 도시의 마천루 사이에서 그의 애견, 샘과 걷는 네빌의 모습이 한없이 쓸쓸해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솔직히 이 영화를 대규모의 액션씬이 기대되는 ‘큰’ 영화로 인지하지만 않는다면, 네빌의 이런 외로운 일상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꽤 흥미로운 영화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영화(혹은 원작) 자체가 개인이 개인으로서의 위치를 상실하고 집단의 무의식으로 흡수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흡혈귀’로의 전염의 공포로 치환하고 있긴 하지만, 사실 이 영화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은 윌 스미스가 연기하는 네빌의 ‘외로움’이다. 영화의 후반부 새로운 사람(말 그대로 ‘사람’)들을 만나서 마음의 문을 열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이유도, 이런 외로움에서 벗어나길 바랐던 그의 바람과, 그 동안 한없이 익숙해진 외로움이 상충했기 때문일는지 모른다. 지금 이 시간, 어떤 관객 자신이 느낄, 대도시에서의 익명성과, 그가 타인과의 관계에서 겪는 어려움 등이 극중 네빌의 모습으로 떠오른다 해도 무리는 아니다. 또 이런 영화의 분위기야말로 <나는 전설이다>가 가지는 가장 큰 영화적 미덕이다.


따라서 <나는 전설이다>에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원작과의 관계를 제외하고), 그건 바로 톱스타가 투입된 대규모 영화로서의 정체성일 것이다. 영화 속 시종일관 캐릭터의 ‘외로움’과, 생존과 치료의 의무감에서 비롯된 ‘의로움’이 느껴지는 것까지는 좋지만, 이 영화에 관객의 기대치를 만족시킬만한 비주얼이 부족한 것만은 사실이다. 여기에 개인적인 꼬투리로 하나 덧붙이자면 영화의 설정상 충분이 감정이입이 가능했던, ‘흡혈귀’의 존재가 스크린상에 너무나 가볍게 표현되었다는 아쉬움이다. 예를 들어 네빌이 그의 개를 잃고 ‘흡혈귀’들을 마구잡이로 살육하는 장면에서 마땅히 그들에게서 느껴졌어야 할 연민이 마음에 차오르지 않은 것은, 어쩌면 이들이 모두 무생물의 그래픽 덩어리처럼 보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또한 이 때문에 주인공의 외로움과 이들이 처한 비극 사이에서 더 피어났어도 좋을 감정의 연장선이 이쯤에서 끊긴 느낌이다. 그리고 이것이 마지막에 백신을 만들어내어 말 그대로 ‘전설’이 되는 네빌을 ‘덜’ 돋보이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이미지출처 Daum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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