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acket / 더 재킷 (2005) - 싱거운 스릴러의 '재킷', 감흥 없는 '휴머니즘'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시간여행은 분명 흥미로운 소재거리이긴 하지만, 너무나 흔히 사용되어 ‘잘 다뤄도 본전’인 경우가 많다. 게다가 이미 <터미네이터>나 <백 투 더 퓨처> 시리즈 같은, 시간의 불역(不易)성을 ‘훌륭히’ 깨부순 영화들이 있는 이상, 앞의 얘기는 더욱 진실에 가깝다. 그럼에도 <더 재킷>은 과감히 이 소재를 가져다 쓴다. 그것도 별스런 기계장치나 괴짜 과학자 하나 없이 ‘옷’ 한 벌을 이용해서 말이다.


이 말은 결국 <더 재킷>이 애초에 단단히 엮인 사건의 인과관계나 그럴듯한 과학적 가설을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는 얘기다. <더 재킷>에서의 시간여행이 여전히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라는 테마에 얹혀있긴 하나, 그 자체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다만 <더 재킷>이 관객에게 끊임없이 던져주는 감성이, 무엇인가 일어날 것 같은 긴장감의 바로 전 단계라는 게 확실할 뿐이다.

 


영화의 초반, 걸프전에서 말 그대로 죽었다 살아난 잭 스탁스(애드리언 브로디)가 우발적인 살인에 휘말리면서 상황이 급박하게 묘사된다. 유력한 용의자지만 정신이상으로 판단되어 유죄를 선고 받은 스탁스가 병원에 들어가기까지, 관객은 영화가 앞 부분에 펼쳐놨던 장면 장면들을 조합하며 이후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지 예측해보기 바쁘다. 걸프전과 주인공의 기억상실증세, 그리고 우연히 만난 모녀와의 관계, 이 모든 것이 단서가 되어 언젠간 사건의 정황을 설명해 주리라 기대하는 것이다. 또한 치료과정에서 스탁스가 입는 ‘재킷’엔 무슨 비밀이 숨어있는 것일까 하는 물음과 함께.


그러나 아쉽지만 이런 것들은 <더 재킷>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다. <더 재킷>이 주목하는 것은 마치 사슬처럼 연결된 사건의 관계가 아니라, 영화가 우리에게 미래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라고 권하는 일종의 ‘교훈’이다. 만약 <더 재킷>을 스릴러의 외피를 두른 영화로 오해하고 본다면, 관객은 커다란 허무를 감수해야 한다. 오히려 같은 마음가짐으로 영화를 대할 때, 시종일관 시간을 이용한 트릭에 집착했던 <나비효과> 쪽이 더욱 바람직한 선택일 것이다. 적어도 <나비효과>는 뭔가 가지고 있는 것처럼 ‘체’하지 않고, 이 비슷한 소재를 가벼우면서도 재미있게 다뤘을 뿐이니까.

<더 재킷>은 스릴러 장르에 어울릴 만한 흥미 있을 요소들을 흩뿌려 놓고 그것들을 스스로 규합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이 영화는 처음부터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보는 편이 옳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정하더라도 일부 겉도는 캐릭터들과 의외의 방향으로 빠지는 결말까지 이해하기엔 역부족이다. 관객이 <더 재킷>을 통해 유창한 미국 억양을 사용하는 영국 배우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한다면 더 할 말이 없겠지만, 처음엔 ‘이 영화는 흥미진진한 스릴러’ 라는 ‘재킷’을 입어놓고 마지막에 ‘사실은 휴먼드라마’라고 이실직고 하는 영화의 행태가 이제와 고깝게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 이미지출처 Daum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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