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 / 워 (2007) - 헐리웃에서 동양의 액션스타가 소비되는 방법

액션영화라는 장르 안에서 각자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두 사람이 한 영화 안에서 만난다면 관객은 분명 뭔가를 기대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신체액션의 강도를 극대화 한 것이든, 기존 액션영화의 문법을 벗어난 새로운 시도든 간에 말이다. 이연걸과 제이슨 스테이덤이 만난 <워>는 그런 면에서 관객의 기대를 받을 만한 영화였다. 비록 두 배우가 헐리웃 최고 수준의 개런티를 받는 스타들은 아니지만, 액션영화 안에서만큼은 누구보다도 부족하지 않은 이름들이다. 폭넓은 관객층을 노리지 않더라도, 적어도 이 장르의 팬들에겐 꽤 기대되는 이 결합이 과연 어떤 결과를 보여줬을까.


이연걸이라는 이름은 동양의 관객들에겐 꽤 커다란 의미다. 90년대를 가로지르는 그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본다면, 그가 아시아에서 이룩한 액션스타로서의 이미지를 과소평가할 관객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아시아, 그것도 동북아시아라는 제한된 지역에서의 평가다. 동양을 벗어나 헐리웃으로 날아간 Jet Li가 자신을 향한 평가를 이곳의 수준으로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아시아의 액션영웅은 미국을 통해 세계시장에 공개되면서, ‘발차기 하나는 꽤 빠른 그저 작은 동양인 남자’가 된다. 제트기만큼 재빠른 이연걸의 동작에 일찍부터 매료된 매니아층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헐리웃에서의 이연걸의 행보는 그다지 눈에 뜨일 것이 없었다. 적어도 그의 이름으로 헐리웃의 메인스트림을 장악한 적은 없다는 이야기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지난 활약상을 소상히 알고 있는 동양의 팬들에게 그의 신작 하나하나는 새로운 기대의 대상이 된다. 영화 <워>도 그런 의미에서 이연걸의 미래(특히 헐리웃 내에서의)를 점쳐볼 수 있는 작은 지점 중 하나다. 그러나 현지에서 뜨고 있는 액션스타 제이슨 스테이덤과의 이 공동연기가 어떤 가시적 성과를 보여줬다고 말하기엔 쑥스럽다. 그것은 이 작은 동양인 배우가 비집고 들어갈, 영화 선택의 여지가 충분치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워>는 다시 그 증거가 된다.


이 영화가 그저 아시아계 미국인들과 동북 아시아시장을 겨냥해 제작된 것이 아니라고 전제하더라도, 영화 <워>가 이연걸에게 요구하는 것은 단 한 가지다. 그것은 물리적인 기술력으로 인체역학의 한계를 늘여놓은 여타 CG 영화들에 식상한 관객들에게, 실제적인 신체가 속도의 한계점으로부터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 동양 배우의 연기력을 시험하는 것, 예컨대 멋진 대사의 효과를 그의 입을 통해 더욱 극대화시키는 등의 야망을 이 영화는 가지고 있지 않다. <워>가 관심 갖는 것은 적절한 시기에 그의 발차기를 보여주는 것이며, 서구사회가 동양을 바라볼 때마다 떠올리는 의리와 배신의 드라마를 거기에 곁들이는 식이다.

빗발치는 총알과 주인공의 심각한 표정 하나라면 족하다는 관객에겐 이 영화가 충분하다. <워>는 이제는 액션영화 형식의 전범(典範)이 된 뮤직비디오 스타일의 톤과 편집으로 일관한다. 사이사이 보이는 배신과 복수의 테마는 언제나 반복되었고 또 영원히 반복될 수 있는 소재다. 그렇다면 결국 이 영화에 대한 기대치는 두 액션스타를 기용한 사실에서 오는 신체액션의 극한에 초점이 맞춰진다. 하지만 이미 사십대를 훌쩍 넘어버린 이연걸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그의 동작은 나이에 비해 여전히 빠르지만, 탄성이 터져 나올 만큼 새로운 액션의 합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그것은 제이슨 스테이덤이라는 새로운 동료의 힘을 보태더라도 마찬가지다.


기존의 스타일을 답습하는 데 그치며, 두 배우의 결합 또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워>가 그나마 내놓는 무기는 반전을 품은 스토리다. 동료애와 배신, 그리고 복수 사이에 방황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즐기라는 얘기다. 다른 영화라면 적어도 영화 중반 이후 관객이 일찌감치 알아챌 이 얕은 장치들에 화를 내겠지만, <워>라면 얘기가 다르다. 두 액션배우가 조성해 놓은 기대감이 무너질 때, 이 영화에서 얻어갈 것이라곤 이것 하나, 즉 제작진이 나름 고심해서 내놓았을 이 설정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워>는 이 재빠른 동양인 액션스타에게 큰 짐을 지우지 않으면서, 딱 할만큼만 하고 빠진다. 이것은 더 이상 새로울 것 없고, 유행에도 뒤진 기성복과도 같다. 그것도 주인공의 치수에 불편할 정도로 정확하게 골라버린.

* 이미지출처 Daum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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