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 Metal Jacket / 풀 메탈 자켓 (1987) - 인간을 인간이 아닌 것으로 만드는 최선의 방법

한 개인이 국가라는 굴레에 씌워진 채 국가의 과대망상에 의해 소비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국가와 국민이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아니라 단지 원인과 결과, 즉 국가가 있기에 개인이 존재한다고만 믿는다면, 언젠간 거대한 집단적 공포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국가간의 이해관계가 얽힌 전쟁이 바로 그러하다. 전쟁은 군인들을 그 공포의 중심점으로 몰아 넣고, 군인들은 그곳에서 미쳐간다. 미국의 씻을 수 없는 과오가 되어버린 베트남전쟁은 양 국가의 수많은 인명이 피를 토해내는 광기의 무대가 되었다. 혼돈의 소용돌이인 이 전쟁터에서 <풀 메탈 자켓>의 해병대원들도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살인기계로 주조하기 시작한다.

 


스탠리 큐브릭의 <풀 메탈 자켓>은 윤리와 상식이 사라진 무질서의 혼돈 속에서 오로지 생존만을 위해 훈련 받은 군인들이 실은 얼마나 미쳐있는지를 잔인하게 보여준다. 영화는 신입 해병대원들이 전장에 배치되기 이전까지의 훈련과정을 보여주는데 전반부를 할애한다. 군대가 개인을 살상무기로 만드는 과정의 핵심은 개인의 의식을 철저히 지우는 것에서 시작한다. 신병들을 담당하는 훈련교관은 온갖 모욕적인 언어로 개인의 자존심을 짓밟는다. 그것은 대개 무능함, 겁쟁이, 게이처럼 사회의 부적응자나 소수자를 칭하는 언어들로 이루어진다. 또한 이런 단어들을 이용하여 개인의 이름을 대신할 별명을 부여한다. 신병은 인간 자체로 주어진 이름과 존엄성을 상실한 채 그 안에 철저히 전쟁을 위한 도구로서의 정체성이 부어 넣어진다. 이제 그는 국가의 ‘재산’이자 적을 살상하는 ‘무기’가 된다. 여기에 개인으로서의 인간은 없다.


이 전쟁 이야기는 인간을 빈 껍데기뿐인 명예의 자리에 안치시키거나, 구시대의 유물이 된 이념의 희생자들로 묘사하여 관객의 눈물을 짜내지도 않는다. 또한 정의로운 군인들의 이야기로 젊은이들로 하여금 병역의무로의 자발적인 지원을 유도하지도 않으며, 세계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하고도 전쟁에서 패한 미국의 심정을 너절하게 짓밟지도 않는다. <풀 메탈 자켓>은 다만 집단의 논리와 결정에 의해 움직이다 점점 미쳐가는 전장의 군인들을 그려낼 뿐이다. 전쟁은 인간을 인간이 아닌 무엇으로 변화시킨다. 그것은 눈, 코와 입, 팔, 다리를 모두 가진 채로, 동물과 구분될 다른 어떤 것도 획득하지 못하는 생물이다. 전쟁을 국익과 외교, 산업의 문제가 얽힌 정치의 현장으로서 냉정하게 바라보는 시각은, 그 안에서 미쳐가는 자들이 당신과 똑같은 인간임을 잊을 때에야 비로소 나오게 된다. <풀 메탈 자켓>의 병사들은 전쟁 안에서 미쳐가지만, 우리는 이렇게 전쟁을 바라보며 미쳐간다. 단지 우리는 우리가 미쳐있음을 모를 뿐이다.

최근엔 국내 개봉된 영화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매튜 모딘이 전쟁이 개인을 어떻게 파멸로 끌고 가는지를 관찰하는 주인공, 조커를 연기했다. 전반부 훈련소 이야기 중 군대의 부적응자에서 총에 집착하는 미치광이로 서서히 변해가는 훈련병, 레너드 로렌스는 빈센트 도노프리오가 실감나게 묘사한다. 외모에서도 악랄한 교관의 풍모가 느껴지는 리 얼메이(R. Lee Ermey)가 신병들을 혹독하게 다루는 하트만 상사로 분한다. 그는 실제로도 베트남전에 참가했던 해병이었다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극악한 고함소리가 꿈에서도 들려올 것 같다.

* 이미지출처 www.moviepos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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