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만표 만화와 환호하는 군중들 (한국만화문화연구원) - 이 책은 '평론집'이 아닙니다



<허영만표 만화와 환호하는 군중들>의 앞부분에는 ‘허영만 만화창작 30주년 기념 헌정 평론집’이라는 문구가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스스로가 밝힌 ‘평론집’에 가깝다기 보다는 만화작가 허영만과 그의 작품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들을 두서없이 풀어내는 쪽에 가깝다. 위의 문구 바로 밑에는 “이 책을 만화가 허영만과 그의 만화에 바칩니다”라는 문장이 적혀있다. 허영만을 만화사적이나 작품의 사회맥락의 관점에서 파헤치는 시각은 이 책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 않는다. 애초에 ‘헌정’이라는 단어로 수식된 작업이었기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가급적 객관적 시각으로 표현되길 원하는(비록 그것이 읽는 이의 헛된 바람일지라도) ‘평론’이라는 단어로는 이 책을 설명하기 힘들다.

예컨대 ‘작가론’이라 분류되어 있는 첫 번째 챕터에서 허영만의 작품 세계를 좀 더 들여다 볼 줄 알았던 독자의 기대는, 작가를 ‘형’이라 부를 만큼 친분을 자랑하는 저자의 말투 덕분인지 칭찬일색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는 내용으로 무참히 무너진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 책의 전체적인 흐름은 이 첫 번째 글과 그리 다르지 않다. 물론 허영만이 지금 이 시점에 한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만화작가로 남아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성공을 가늠하는 수치와 대중의 관심도가 곧 모든 평가의 지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독자가 ‘평론집’이라는 분류제목을 통해 알고 싶은 것은 그의 작품이 가지는 시대적, 만화사적 의의와 그가 당시와 후대에 끼친 영향력이지 작가 허영만이 어떤 이유로 벤츠와 골프에 심취해 있는지가 아닌 것이다.

 


그래도 이 책의 의도와 연결해 볼 때 건질 글이 있다면 만화평론가 박석환이 쓴 ‘계보론: 아스팔트 그 사나이는 지금 어디에서 달리고 있는가’와 ‘작품론 1: 소재 전문화로 벗어던진 80년대 캐릭터의 무덤’이다. 이 글들은 본 책의 다른 부분들에 비교해 볼 때 허영만이 작가로서 걸어온 과정과 그의 작품이 우리나라의 만화사에서 가지는 위치 등을 풍부한 자료들과 함께 비교적 객관적으로 서술한다. 이 안에는 한국의 만화제작의 문제점으로 꼽힐 수도 있는 대본소용 분업 창작만화가 작가의 화풍과 만화산업의 역사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주고 받았는지에 대한 저자의 주장도 나와있다. 거기에 허영만의 태생적 배경과 그의 작품 안에 담긴 역사인식을 연결하는 대목도 있어 눈길을 끈다. 또한 박석환의 두 글은 관념적인 단어와 복잡한 문장의 형식을 배제함과 동시에 작가 허영만에 대한 일방적인 옹호의 태도는 가급적 자제하고 있어 글이 쉽게 읽히면서도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허영만표 만화와 환호하는 군중들>에서 책의 의도(물론 나 같은 독자에 의해 기대되는 의도겠지만)에 가장 어울리는 글은 이 둘뿐이었다.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