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10 To Yuma / 3: 10 투 유마 (2007) - 미워할 수 없는 악당, 미워할 수 없는 서부극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댄 에반스(크리스찬 베일)는 남북전쟁으로 다리를 다친 후, 아내, 두 아들과 함께 비스비 마을 근처에서 조그만 목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에반스는 그의 땅을 철도회사에 팔아 넘길 속셈을 가진 홀랜더(레니 로프틴)에게 진 빚조차 제대로 갚지 못할 만큼 경제적 사정이 여의치 않다. 더구나 목장으로 들어오는 수로까지 가로채버린 그에게 이제 모든 것을 빼앗길 판이다. 한편 악명 높은 총잡이인 벤 웨이드(러셀 크로우)와 그의 부하들은 댄 에반스의 소들을 이용해 비스비로 들어오는 철도회사 용병들의 마차를 탈취한다. 이 와중에 그는 댄과 만나고, 그에게 말을 빌려주면 마차를 세우는 데 쓴 소들을 돌려주겠다 제안한다. 보안관 일행을 가볍게 따돌리고 비스비 마을에 도착한 웨이드. 그러나 그가 오랫동안 찾아온 여인과 만나는 사이 체포되고 만다. 극악무도한 악당을 체포하는데 성공한 보안관과 철도회사는 북군의 사수 출신인 댄 에반스를 끌어들여 웨이드를 컨텐션으로 호송할 계획을 세운다. 이들은 그곳에서 벤 웨이드를 3시 10분발 유마행 열차에 태워야 하고, 돈이 궁한 에반스는 뒤돌아볼 것 없이 이 호송작전에 참여한다. 그러나 문제는 벤의 부하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보스를 되찾기 위해 호송팀을 위협하기 시작한다. 호송자들은 가차 없는 살인에도 눈깜짝하지 않는 이 무법자들의 눈을 피해 웨이드를 열차에 태우는 데 성공해야 한다.


관객이 서부극에서 기대해 봄직한 관습 중 하나는 확실한 악역의 구축이다. 그런데 <3: 10 투 유마>는 그런 기대로부터 살짝 비껴간다. 그렇다고 ‘알고 보니 악당의 본 모습이 선하였더라’는 식으로 모든 것을 반전시키진 않는다. 이 애매한 상황을 좀 더 말해 보자면 이런 거다. ‘벤 웨이드는 살인에 거리낌이 없는 악인이다. 그러나 때로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인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악당이다.’ 사실 최근 영화들 속 캐릭터의 선악 경계는 거의 구분이 힘들 정도로 옅어졌다. 어쩌면 <3: 10 투 유마>는 그런 경향의 일부분을 단지 서부시대라는 배경 안에 흩뿌렸을 뿐인지도 모른다. 엘모어 레너드의 원작소설과 57년의 동명영화에 그 뿌리를 둔 이 영화가 그런 선악의 모호함을 보조재료로 충분히 활용하고 있는 것은 결과적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영화의 심리적 긴장은 누가 봐도 악역임에 분명한 악당 벤 웨이드가 더 이상 극악한 살인마로 보이지 않게 될 때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범법자와 상처 입은 영혼 사이를 왕래하는 웨이드의 캐릭터는 관객의 옳고 그름의 기준을 흐린다. 여기에 영화에서 유일하게 올곧은 인물이라 봐도 좋은 댄 에반스와 그가 주고 받는 반목과 이해, 그리고 동정의 시선들은 영화의 전개가 어떻게 반전할지 모를 긴장감의 토대가 된다.

 


두 주인공이 펼치는 심리적인 대결구도는 두 배우의 빈틈없는 연기와 어우러져 서부극의 지루한 관습에 갇히지 않는다. 특히 영화 전체를 이끄는 러셀 크로우의 단호한 인상은 가끔씩 그 틈에 숨겨진 슬픔을 드러내 줌으로써 관객의 마음을 흔든다. 가장으로서의 급박한 심정을 담은 크리스찬 베일의 표정도 인상적이지만, 사실 <3: 10 투 유마>의 주된 흐름은 이런 벤 웨이드의 심리적인 변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영화의 스토리는 이 악당의 선택이 어떻게 변해가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컨텐션의 주민들이 웨이드 부하들의 유혹(건물에 숨어있는 호송자들을 한 명씩 죽일 때마다 200달러씩 주겠다는 제안)에 이끌려 모두 에반스의 적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이다. 여기에 오기까지 적으로 대치했던 두 사람, 에반스와 웨이드는 이 순간부터 일시적 동료가 된다. 가족의 경제적 안정과 평안을 보장받음과 동시에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로 남으려는 에반스. 그리고 그의 그런 모습에 설득당하는 벤 웨이드는 그 동안 줄곧 잡고 있었던 서로간의 긴장의 끈을 풀어내고 드디어 한 배를 탄다. 관객은 이들이 대결과 화합 중 어느 노선을 선택할지 고대하다 드디어 그 결과를 확인하게 되는 셈이다. 그리고 적과 동료가 서로 교차되며 물고 물리는 이 마지막 지점에서 정신 없는 쾌감마저 느낀다. 이는 모두 벤 웨이드의 심리적 변화가 몰고 온 결과다.


그러나 영화의 결말까지 보고 나면 관객은 다시 갈등하게 된다. 벤 웨이드는 그의 오른팔인 찰리 프린스(벤 포스터)를 비롯, 자신을 구하러 와준 부하들을 모두 죽여버린다. 가족을 지키려는 댄 에반스와 충직한 벤의 부하들 사이에서 어느 쪽이 이 무법자에게 더 큰 가치를 지니는지 끊임없이 비교해온 관객으로서는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다. 이 결말은 그가 영화 막판 댄 에반스의 모습에 완전히 동화되어 있을 때 그의 부하들이 에반스를 사살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겠지만, 사실은 그가 자신의 본 모습을 되찾았다고 보는 편에 가까울 것 같다. 벤 웨이드는 기본적으로 잔인한 약탈자이자 냉혹한 살인자이며, 이것이 댄 에반스에 의해 바뀌었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관객의 착각일지 모른다. 웨이드는 결말에 와서 안타까운 가장의 죽음으로 충격 받은 우리를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자신의 기분과 생각대로 행동했을 뿐이다. 영화 앞부분에서 그가 임무를 소홀히 한 부하를 가차없이 살해하는 장면이 그 복선으로, 신의를 저버리지 않고 자신을 구하러 와준 충실한 부하들도 순간의 기분에 의해 처치해버리는 것이다. 벤 웨이드에 대한 판단에서 비롯될 관객의 갈등은 호송기차에 올라탄 그의 진정 안 되는 표정만큼이나 불안정하다. 영화의 맺음에 이르기까지 식상한 서부극의 관습을 저버리며 달려온 영화는 순간 끈끈한 버디무비의 형태를 띠는가 싶더니 다시금 그 진심을 알 수 없는 벤 웨이드의 얼굴을 잡으며 크레딧을 올린다. 사실 이쯤 되면 관객도 얼떨떨해진다. 그러나 웬일인지 명확한 가치판단을 요구하는 그 어떤 결말보다 이 복잡한 심정의 마지막이 반갑다. 미워할 수도 미워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이 애증의 대상이 그 자체로 인상적이기 때문일까.

* 이미지출처 Daum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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