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키 발보아 / Rocky Balboa (2006)

영화 속 록키는 실제의 스탤론과 정확히 일치한다. 왕년의 챔피언에서 조그만 식당 경영자로 살아가는 노년의 록키 발보아는 최고의 액션스타에서 이제는 자신의 주 무대를 찾기도 힘든 실베스터 스탤론 그 자체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 록키의 대사는 <록키 발보아>의 감독, 각본, 주연을 모두 해치운 이 노장배우의 마음 속 울림 같다.

 


록키는 자신 안에 뭔가 풀리지 않는 응어리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나이든 권투선수가 새파란 챔피언(안토니오 타버)과 맞붙어 획득한 것은 승리도 패배도 아니고 스스로의 존재감이다. 추억만으로 살아갈 수 없는 이 주인공은 과거 안의 자신이 아닌 현재의 자신을 찾고 싶었나 보다. 그가 경기를 끝낸 후 친구 폴리(버트 영)에게 그 맺힌 뭔가가 풀어졌다고 고백하는 것은 지금 생생하게 뛰고 있는 자신의 심장을 가리키는 말이었을 게다. 또 이것은 이 영화 <록키 발보아>의 그 차분한 끝맺음이 다시금 팬들을 사로잡았을 때, 실베스터 스탤론이 느낄 심정과 같다. 아마 그는 영화 밖에서도 그 응어리를 풀어냈을 것이다.


영화 안팎 주인공들의 한을 풀어준 <록키 발보아>는, 그러나 스스로의 매력을 발산한다기보다 과거 시리즈와 공명하며 철저히 팬들의 향수에 기대는 작품이다. 영화는 마지막 시합부분에 이르기까지 줄곧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준다. 나이 든 록키는 폴리와 마리, 그리고 그녀의 아들과 발보아 주니어에 이르기까지 등장인물들에게 끝없이 뭔가를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결국 ‘주변을 신경 쓰지 말고 스스로의 신념대로 살아라’는 설교에 가깝다. 이 메시지는 이 복서가 살아온 인생의 방식을 설명해 주면서 또한 현재의 자신에 대한 주문이기도 하다. 긴 공백기를 거친 노장은 이런 자신의 신념에 충실했던 과거, 거칠 것이 없던 스스로를 그리워하다 마침내 그것을 현실로 끌어온다. 그리고 그것은 시각화라는 영화장르의 전제 앞에 찬란했던 육체의 재현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영화 속에선 50대, 실제로는 60대인 실베스터 스탤론은 자신의 육체적 한계를 최소화하여 스크린에 펼쳐내는데 주력한다.

즉 <록키 발보아>의 목적은 별다른 영화적 매력을 드러내기에 앞서, 과거 주인공의 단단한육체와 인간승리의 드라마를 결부시키며 시리즈의 팬이 되었던 관객들에게, 아직도 무뎌지지 않은 그의 주먹을 한번 더 보여주는 것이다. 마치 잠언집의 문구 같은 록키의 대사들이 낯간지러우면서도 이 영화를 끝까지 보게 되는 것은 궁극적으로 ‘60대임에도 여전히 건장한 록키, 스탤론의 육체’다. 이 자체가 관객으로 하여금 현재와 과거를 자연스럽게 연결하게 만드는 원동력이자, 관객 자신들의 향수를 작품에 대한 호의로 탈바꿈시키는 주 원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처럼 <록키 발보아>를 하나의 독립된 영화로 보고자 하는 이들(시리즈를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다는 핑계와 함께)은 이 이야기가 인상적으로 느껴지지 않는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나는 <록키 발보아>에서 나이를 잊은 스탤론의 몸과 그 의지에만 감탄할 뿐, 이 영화를 통해 76년에 태어난 <록키>를 다시 떠올리는, 일종의 예정된 기시감을 불러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영화 <록키 발보아>는 시리즈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영화다. 자의식이 표출된 독백처럼 들리는 그의 끝없는 대사들(정말 말이 많다)은, 다섯 편의 전작들에 대한 관객의 추억(최소한 한 편이라도) 없이는 정말 와 닿지 않는다.


하지만 젊은이와의 대결을 통해 녹슬지 않은 육체를 과시하며 과거에 다다르고 싶었던 스탤론의 희망마저 여기서 폄하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이건 그가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의 한계와도 밀접해 보이기 때문이다. 나이든 배우는 어차피 두 가지 중 하나의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그것은 나이 듦을 자연스레 인정하는 것과 그것을 끝내 거부하는 것이다. 잭 니콜슨이나 클린트 이스트우드 같은 배우들은 대개 전자의 것을 택한 것처럼 보인다. 허나 연기의 스펙트럼을 다양하게 넓혀온(연기의 방식이 아니라 영화의 성격에 따른 것이지만) 이들과 주로 하나의 분야 안에서만 빛을 발했던 스탤론을 동일선상에 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왠지 불공정하다. 물론 이런 제한된 빛남이 배우 자신의 능력에 기인한 측면도 있더라도 말이다. 한참이나 어린 복서와 대등한 경기를 치르려는 록키는 누가 봐도 뒤늦은 객기를 부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록키’와 ‘람보’의 이미지 사이에 갇혀있는 그에게 <록키 발보아>식의 결말, 즉 육체와 젊음을 최대한 되새김질하는 방법이 더 어울리는 것만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록키 발보아>는 늙을래야 늙을 수 없는 액션스타의 운명을 이런 식으로 드러낸다.

* 이미지출처 Daum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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