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짓기의 어려움

살고 있는 방 안은 지저분한데 이런 것의 깔끔함엔 집착하는 이 괴상한 양면성. 뭔고 하니 블로그에 글 올리는 형식의 통일성 같은 것 말이다. 그 중에서도 카테고리의 목록을 클릭하여 글의 제목들이 같은 형식으로 쭈르륵 나열되는 것을 보며 흐뭇해하는 모습. 일종의 변태라면 변태다.

그런데 그런 것을 의식할 때마다 항상 막다른 곳에 다다르게 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글의 제목. 블로그에 흔적을 남기기 시작한 때부터 감상글에 속하는 포스팅에 있어서는 일정한 형식의 제목을 달아왔는데, 거기엔 대상에 대한 감상을 내 느낌대로 뭉뚱그린 소제목들을 달거나 혹은 달지 않았다.

이를테면 영화 <좋지 아니한가>에 대한 글에선, 영화가 캐릭터의 희귀성에 집착한 나머지 쓸데없는 등장인물까지 만들어낸 것 같다는 내 느낌을 요약하여 ‘캐릭터에 모든 것을 걸어볼까?’라는 제목으로 드러냈다. 반면에 방대한 내용 덕분에 한 문장으로 요약하기도 버거운 책 <장미의 이름>의 감상글엔 그저 호르헤와 윌리엄의 대결구도 그대로 ‘신학과 이성이 충돌하는 중세 유럽의 세계’라는 제목을 붙였지만, 사실 글의 내용과는 그리 밀접하지 않은 문구였다. 그런가 하면 제목 짓기에 지친(?) 나머지 한동안 내 느낌을 담은 소제목을 붙이지 않은 글들도 있었다. 글 제목의 형식이 바뀌는 지점들은 그런 피곤(그렇다, 사치스런 단어 맞다!)이 몰려오던 시기라고도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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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없이 멈춰진 하얀 손...


어떻게 보면 적어도 내게는 ‘제목’이라는 단어가 주는 강박이 있었던 것 같다. 그건 제목이 언제나 글의 핵심을 가리키고 있어야 한다는 하나의 선입견이자 일종의 보수성이다. 사실 웹의 변두리에 있는 이 블로그에서 그런 보수적인 형식에 얽매여야 하는 의무는 없다. 더구나 글의 내용이나 형식의 다양성이 존중되는 현 시점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 강박은 쉽게 떨쳐지지 않는다. 비겁하지만 무심코 핑계를 대 보건대 이른바 논술이라는 정형의 글쓰기가 우리의 교육과정 어느 지점엔가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모든 글이 신문 사설의 겉모습을 닮을 필요가 없듯이 어떠한 글도 내용을 축약한 제목을 달고 있을 필요는 없다. 아, 하지만 쇠사슬에 묶인 이 뇌세포, 이 고정관념을 움직이게 하는 건 여전히 쉽지 않다. 글의 제목을 별 어려운 생각 없이 달 수 있을 미래는 나에게 결코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하나의 문구로 표현되는 소제목을 아예 없애버렸다(사실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으나 최근엔 <록키 발보아>에 대한 글에서부터 다시). 최근에 끼적댄 글들을 보면 사실 글과 제목이 따로 노는 부분들도 많았을 뿐 아니라, 언제나 글쓰기의 마지막에 마주하는 것이 제목 짓기였을 정도로 부담감이 있었다. 누가 당신의 글들을 읽겠는가, 또 누가 당신의 제목에 신경 쓰겠는가, 라고 나에게 묻는다면 할 말이 없지만, 최소한 제목 짓는 시간(얼마나 제목이 쉽게 나와주지 않았으면 이런 표현을 쓰랴)을 아낄 수 있다는 긍정적인 부분 하나는 얻었다는 얘기는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소제목을 달지 않는 것에 대해 또 한 가지 변명해 보건대, 나의 감상들이 하나의 갈래로 엮어질 만큼 일관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무엇을 보고 나면 이런 저런 생각들이 내 뇌리에 두서 없이 펼쳐지는 것이다. 어떨 땐 서로 다른 두 가지 관점이 충돌하는 경우도 있어 나를 당황케 한다. 예전의 지인은 나에게 이런 이유(생각의 두서 없음)로 글을 쓰기 어렵다는 것은 다시 말해 ‘하고 싶은 말이 없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말하자면 하나의 큰 기둥이 되는 관점 없이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여러 이야기를 억지로 짜깁기 한다는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나의 사유의 깊이와 넓이를 재고해야 한다는 다른 논점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기에 여기서 그만. 아직까진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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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늘히 식어가는 키보드...


고로 마지막에 ‘삼천포’로 잠깐 빠져보자면, 언제나 명료한 제목을 내놓는 사람들이 부럽다는 얘기(음, 너무 생뚱맞나?). 전에도 잠깐 포스팅한 적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 블로그가 웹상의 소통보다는 나의 글쓰기 연습이라는 매우 이기적인 목적으로 탄생한 측면이 강한 만큼, 아직도 갈 길 먼 저 유려한 글쓰기의 길에 질투를 유발하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좋은 제목(결코 ‘낚시’와는 다른)으로 사람들을 끌어당긴 후 거기에서 한 치의 논점의 차이 없이 이어지는 글로 그들을 매료시키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글. 잡다한 생각들이 서로 모아지지 않은 채 그저 자신들의 고물을 흘려대는 이 블로그에선 그런 글을 찾기 힘들다는 것쯤은 나도 안다. 다만 희망사항일 뿐. 그러니 이 희망이 충족되는 지점쯤엔 다시금 소제목을 등장시킬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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