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論 (키리도시 리사쿠)



<이웃의 토토로>를 본 것은 고등학생이 다 돼서였다. 어린 시절이라고 하기엔 머리가 너무 컸던 그때에도 사쯔키와 메이, 그리고 세 마리의 토토로가 벌이는 소박하지만 환상적인 이야기에 넋을 놓았다. 지금은 그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으나 사실 그 이전에도 <미래소년 코난>을 꼬박꼬박 챙겨보던 내 모습만은 잔상으로 남아있다. 그 외에 그의 손길이 들어간 작품들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받아들이며 성장해온 내 또래 세대들은 그의 이름이 굉장히 친숙하게 느껴질 것이다. 지금 현재 대중적인 인지도 면에서 가장 유력한 애니메이션 작가로 미야자키 하야오를 꼽는데 아무도 주저하지 않는다. 비록 그의 작품세계에 동화되지 못한 이들이라도 말이다. 나는 지금도 미야자키 하야오, 혹은 지브리의 신작들을 여전히 고대하고 있다. 키리도시 리사쿠의 <미야자키 하야오론>은 이 애니메이션 작가의 초창기 스탭참가작에서부터 책이 발간될 무렵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이르기까지의 작품세계를 다루고 있다. 미야자키의 팬이라면 구미가 당기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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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론>의 원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이다. 후자가 작가의 작품을 객관적인 시선을 거쳐 그의 신념과 사상을 엿볼 가능성을 느끼게 해준다면, 전자는 사실 ‘論’이라는 말이 전해주듯 저자 자신의 주관적인 해석에 의존하리라는 기대를 낳는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이 책의 정체성은 양 제목의 중간지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키리도시 리사쿠는 작품의 줄거리와 함께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면서, 또한 미야자키 하야오와 그에 관련된 사람들의 글이나 인터뷰를 덧붙이며 내용을 채운다. 즉 저자가 이 애니메이션 작가의 결과물들을 직접 ‘論’하기도 하고, 또 인용된 글들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가적 정체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작가 자신이 이 책에 앞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팬이기 때문에 그의 작품들에 대개는 비판적이지 않은 태도를 취한다는 점이다. 굳이 비판이 필요한 부분이라면 미야자키 하야오를 비판한 다른 이들의 말을 인용하는 정도다.

 


솔직히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에 대해 저자 나름대로의 해석을 내놓은 부분보다는, 작품 콘티에 써있던 미야자키의 메모라든지 그의 인터뷰 발췌, 혹은 다른 이들의 다양한 평가들을 들여다 놓은 부분이 훨씬 흥미롭다. 사실 키리도시 리사쿠 자신의 느낌과 해석은 때로는 너무 머뭇거리는 태도(의문의 어미를 자주 사용한다)를 보이거나 가끔 비약이라 느껴질 때도 있어 그리 인상적이지 않다. 더구나 책의 많은 부분을 작품의 줄거리를 묘사하는데 할애하고 있기 때문에 <미야자키 하야오론>을 읽는 동안 뛰어넘을 지점들이 많이 보인다. 이 책을 읽는 이 중 물론 미야자키의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 그의 팬일 경우가 많을 거라는 생각을 하는데, 그런 사람들에게 일일이 작품의 내용을 알려주는 것이 그리 필요했는지 의문이다.

이 책에서 기억에 남을만한 것 몇 가지를 꼽아보자면 앞서 말했듯 미야자키가 직접 콘티에 써넣은 메모, 또 그의 작품들에 어머니상이 부재하는 이유를 저자가 추측한 부분,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사회인식을 엿볼 수 있는 단락들 정도가 되겠다. 예를 들어 <이웃의 토토로> 콘티에는 올챙이를 바라보고 있는 메이의 얼굴 옆에 원화담당자에게 이런 행복을 알고 있는지 묻는 문구가 적혀있다고 한다. 애니메이션은 본래 모든 것이 의도된다. 책에서도 밝히듯 배우들을 아무 지시 없이 그저 설정된 상황에 던져 넣고 촬영할 수도 있는 실사영화와는 달리 애니메이션은 배우(캐릭터)에서부터 미장센에 이르기까지 모두 인간의 손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미야자키가 남긴 콘티의 메모들은 모두 작가의 의도에 정확히 들어맞게 하기 위해 활용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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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미야자키 하야오론>을 읽고서야 비로소 느끼게 된 것이지만 그의 작품들에는 어머니가 제대로 묘사된 적이 없다. 예컨대 <이웃의 토토로>에서도 영화의 클라이맥스, 즉 엄마를 찾아나선 메이의 실종사건을 다루기 위해 어머니가 존재할 뿐, 그 자체가 영화 전반에 비중 있는 역할은 아니었다. 이는 다른 작품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주인공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나타나는 어머니상은 전무하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어머니는 <이웃의 토토로>에서의 엄마처럼 긴 투병생활로 정상적인 어머니 역할을 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때문에 그는 성장기 동안 어머니에 대한 인식이 각인되지 않았고, 이 같은 어머니상의 부재는 그의 작품 안에서 드러난다. 이 부분에선 아무리 철저히 상상력에 의존하는 창작자라도 어쩔 수 없이 자신의 경험에 일정 부분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예술가의 눈은 사회를 통해 습득된 시선을 포함하고 있다.

키리도시 리사쿠는 또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정치적 성향도 살짝 논하고 있는데, 대부분 익히 알고 있는 데로 일체의 정치세력을 거부하는 무정부주의적인 시각(<붉은 돼지>), 자연에 대한 경외(<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이웃의 토토로>), 주인공(혹은 비중 있는 조연)으로서의 여성을 묘사하는 방식(<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천공의 성 라퓨타>, <마녀의 특급배달>, <모노노케 히메>) 등에 대해 조금씩 언급하고 있다. 때로는 이런 논점들을 중심으로 평단과 주변의 서로 다른 다양한 의견들도 밝히고 있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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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개인적으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 혹은 지브리의 애니메이션들이 역사 안에서의 일본을 바라보는 인식에 대한 아쉬움이 있는데,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그는 전쟁을 싫어한다는 원론적이고 짧은 언급만 되어있어 뭔가 풀리지 않은 느낌이다(키리도시 리사쿠 자신도 되도록 그 부분을 피해가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물론 미야자키 하야오가 일본의 어두운 역사를 혼자서 정면으로 응시할 강력한 의무는 없겠지만 그가 세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영향력을 고려해볼 때 때로는 일본의 책임감 있는 작가로서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어떨까 생각하게 된다. 그의 작품들이 주로 판타지의 어법을 쓴다던가 유럽풍의 배경을 취하는 것으로 일본의 현실을 살짝 빗겨가면서도 사회에 대해 일정부분 비판적인 시선을 드리우고 있으나, 이는 대개 보편적인 인간사회를 아우르는 것일 뿐, 정작 현 일본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과거 1세기 미만의 역사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는 것 같아 아쉽다. 작가로서의 그를 볼 날이 그다지 많이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씁쓸하지만 사실이므로)이 그런 아쉬움을 배가시킨다.

마지막으로 몇 가지 단점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게 읽었던 이 책은 전체적으로 일본식 문체를 의역하지 않고 그대로 번역한 티가 역력해 읽기엔 조금 불편했다. 애초에 관념적인 단어를 자주 구사하는 그네들의 언어습관(혹은 글 쓰는 습관)이 원인이기도 하겠지만, 도무지 뜻을 파악하기 힘든 문구들이 곳곳에 보이는 게 사실이다. 직역의 묘미(?)를 살린 문장들이 그대로 나타날 때엔 간혹 위화감을 느끼곤 한다. 새삼 번역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것은 이 책의 보이지 않는 부록.

* 이미지출처 Daum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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