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장 / 投名狀 (2007)

중국이 영화제작에 ‘인해전술’을 도입하기 시작한 것은 이미 꽤 오래 전 일처럼 느껴진다. 헐리웃이 새로운 비주얼 테크놀로지를 경쟁적으로 영화에 적용하고 있는 한편, 중국은 엄청난 인구와 상대적으로 낮은 인건비를 바탕으로 엑스트라만으로도 화면을 채울 수 있는 이 전대미문의 방식(전쟁을 제외한다면)을 사용하고 있다. 엄청난 인력이 투입된 화면은 그 자체로 스펙터클하다. 그러나 사실 이런 방식, 즉 대규모의 군중씬이 어울리는 영화는 대개가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경우이다. 그 자체로 씁쓸한 말이 되는 전쟁의 스펙터클은 실상에서는 혼돈일 테지만 영화에서는 스크린 상의 압도로 나타난다. 어쨌든 진가신의 <명장>도 이런 흐름에 영합하는 영화가 틀림없다.



그러나 무작정 머릿수로만 화면을 채우려는 영화는 누가 봐도 질리기 십상이다. 아무리 시대적 특성을 잘 살린 미술과 의상이라도 그저 그것들을 걸치고 있는 수많은 엑스트라들을 보는 재미란, 엄밀히 말해 없다. 화면 안에 나타나는 한 순간의 수적 압도가 영화 전체를 책임지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명장>은 의형제를 맺은 주인공들의 갈등을 스토리의 핵심으로 잡고 여기에 스타일리쉬한 연출과 촬영을 곁들여, 이 영화의 주된 목적인 전쟁씬의 앞뒤 혹은 그 중심에 배치한다.


19세기 청나라, 태평천국의 난을 배경으로 청나라의 장수 방청운(이연걸)은 도적떼의 우두머리와 손잡고 반란을 진압하고자 한다. 조이호(유덕화)와 강오양(금성무)이 그들로 이들 셋은 의형제의 결의를 맺는다. 그러나 수많은 전쟁이 진행될수록 이 세 의형제의 사이엔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 주된 원인은 방청운이다. 전투의 패자에서 촉망 받는 장수로 다시 태어난 방청운은 사실 전쟁을 도구로 자신의 미래를 키우는 게 목적이었고, 반면에 도적떼의 두목이었던 조이호는 우두머리로서 부하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더 강했다. 강오양은 이 금 간 두 의형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이다. 이렇게 <명장>은 이야기의 주된 축으로서 의리와 배신의 드라마를 강조한다.

하지만 이들 의형제의 이야기는 사실 수없이 반복되어 매우 익숙한 테마나 다름없다. 그래서인지 진가신은 이야기의 흐름 사이사이에 매우 ‘때깔’ 좋게 연출, 촬영된 화면들을 집어넣는다. 말하자면 이야기로 사로잡지 못하는 부분을 비주얼 자체로 메우려는 시도다. 물론 이것은 수많은 엑스트라를 동원하는 전쟁씬과 서로 보조를 맞추며 진행된다. 예를 들어 주인공의 군대가 남경을 공략하는 대목은 다이제스트로 편집되어 보여지는데, 여기엔 긴박감 넘치는 배경음악, 삼형제의 전쟁상황을 중계하는 경극과 실제 전쟁장면의 교차편집, 그리고 무채색과 붉은색의 대비되는 강렬한 화면 등이 어우러져, 시퀀스 자체가 굉장히 스타일이 넘치도록 완성되었다. 이 밖에도 방청운이 청나라의 실세들을 만나는 장면 등은 철저히 양식미에 기대고 있다. 무겁게 내리쏟아지는 비와 결의에 찬 방청운의 표정, 잿빛 톤의 화면과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그의 상관들의 모습. 이는 모두 <명장>이 이야기 자체보다 영화비주얼에 있어서의 형식적 실험의 일환으로 제작되었다는 느낌을 준다. 또한 이것이 그 세부적 방식은 조금 다를지라도 대규모 군중, 전투씬이 포함된 그 동안의 다른 중국영화들과 여전히 연결되는 부분이다.


이연걸이 모처럼 몸을 많이 활용하지 않는(그래도 여전히 현란한 무술실력을 보여주지만) 역을 맡아 나름대로 열연한 <명장>은 상대역인 유덕화, 금성무의 좋은 연기와 맞물려 배우 자체를 보는 재미도 전해준다. 여기에 감독 진가신의 색채인지 아니면 일종의 트렌드 시험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현란한 화면 구성이 영화적 매력을 돋우고 있다. 그러나 오로지 인간 육체의 미와 테크놀로지의 결합 그 자체였던 영화 <300>처럼 <명장>도 화려하지만 어딘가 허전한 영화로 남게 될 것 같다. 최근의 영화 중 그 스타일에 있어서 가장 강렬했던 <300>처럼 <명장>도 소재보다 그 구현의 방식이 더 두드러져 보인다. 물론 이런 허전함과 아쉬움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결국 취향의 차이로 귀결된다. 다만 나에겐 <명장>이 열광하기엔 그저 심심했던 영화였을 뿐이다.

* 이미지출처 Daum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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