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드 레이서 / Speed Racer

이 아니메 오타쿠 형제가 진짜 하고 싶었던 얘기는 결국 레이싱에 있어서 따라올 자가 없는 한 소년의 고군분투 승리담, 또는 레이싱 트랙만큼 짧고 강렬한 성장기였다. 의도했든 안 했든 수많은 철학적 담론들을 배출해 낸 <매트릭스> 1편을 부담스럽게 감싸느라 속이 울렁거렸던(그러나 어쨌든 호감은 여전한) 전작 트릴로지에 비해 <스피드 레이서>가 담백하고 기분 좋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감독(들)의 진심이 관객(적어도 나 같은)에게 전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의 지나치리만치 단순한 이야기구조와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감독의 경건한(!) 태도가 표출된 화려한 미장센은, 철학적 배경을 빌려 펼쳐놓았던 영웅담에 비해 몸무게가 훨씬 가볍다.


원작과의 관계를 멀리 놓고 보더라도, 두 워쇼스키의 의도는 아니메의 완전한 실사화라기 보다 두 장르를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겹쳐놓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판타지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만큼 철저히 비현실적인 배경과 설정, 그리고 일본 애니메이션 내지 만화 컷 속의 특징적인 연출방법(예를 들면, 동작의 속도감을 강조하기 위해 배경을 삭제한 채 동선을 따라 그려진 직선, 또는 물체와 물체의 충돌의 순간 그려지는 만화적인 힘의 표현 등)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투여한 <스피드 레이서>는 이 자체로 실사영화이기도 하고 애니메이션이 되기도 한다.

 


이 영화에는 대규모의 자본이 투입된 영화로는 과감할 정도로 황당한 연출들이 많아 어쩌면 영화에 대한 관객의 좋고 싫음이 굉장히 명확해지리라 여겨진다. 여기서 한 가지 외부의 기준점을 불러오자면, <스피드 레이서>를 보는 내내 떠올려졌던 로드리게즈의 <스파이 키드> 시리즈. 이 가족 스파이 영화를 유쾌하게 감상한 이들은 이 영화에도 호감을 보이리라 기대되며, 그렇지 않고 유치한 아동영화라 치부하며 뒤돌아 앉았던 이들에겐 <스피드 레이서> 또한 마주하기 곤욕스러운 영화가 될 것이다. 두 영화는 스타일의 유사성 외에도 주인공(들)의 성장을 둘러싼 배경으로 가족을 배치해 놓는다는 점에서도 가깝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스파이라는 직업군에 속해 있거나 레이싱 관련 가업을 계승하고 있다는 설정과 함께, 두 영화 모두 이 특히나 밀접한 관계의 가족들이 그들을 향한 외부의 위협을 어떻게 극복하는 지 자체가 주인공 소년, 소녀의 성장의 구심점이 되는 것이다. <스피드 레이서>의 결말에서 승리를 쟁취하는 것은 주인공 개인이겠지만 그가 들어올릴 우승컵 아래에는 나머지 가족들이 함께 한다. 위기의 극복이 가족의 관계를 공고히 한다는 면에서도 왠지 두 영화는 비슷해 보인다.


<스피드 레이서>의 만화적 상상력과 놀라운 비주얼은 간결해진 이야기와 함께 보는 이로 하여금 전혀 다른 양 갈래의 감상을 낳게 하겠지만, 어쨌든 나는 이 영화의 속편이 보고 싶어질 만큼 매료되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배우들의 면면이나 연기를 보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는데, 특히 폴리 릿이 연기한 레이서 가의 막내, 스프라이틀은 만화에서 곧바로 튀어나온 것처럼 명랑한 캐릭터 그 자체다. 여기에 전편의 무거운 주제를 두 편의 속편에 걸쳐 수습하느라 머리가 빠질 지경이었음이 분명한 감독들이, 적어도 이 영화에서만큼은 자신들의 본래 취향 그대로 표출해 내며 즐겁게 임했을 태도가 영화에 그대로 투영된 것 같아 러닝타임 내내 흥겨웠다고 할까. 유치하거나 배꼽 빠지는 만화적 표현력으로 가득한 <스피드 레이서>는 일본 애니메이션에 바치는 역대 가장 비싼 오마주 같은 느낌을 준다. 단순히 ‘원작 애니메이션의 실사화’라는 문구로는 이 영화의 느낌을 고스란히 전달하기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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