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분 (파울로 코엘료)

11분이라는 제목이 재미있다. 파울로 코엘료는 일반적으로 섹스에 소요되는 시간을 11분으로 상징화했다. 저자는 이 책을 쓰는데 어느 정도 영감을 받았던 어빙 월리스의 <7분>이라는 작품에서 그 기준점을 가져왔다고 한다. 다만 7분이라는 시간이 너무 ‘인색’해 보여 자신은 4분을 더 추가했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둘 다 다소 박해 보이는 숫자이긴 매한가지나, 이 소중한 순간들이 대개 5분여에 그치고 마는 사례들도 허다하니 파울로 코엘료의 기준, 더 나아가 어빙 월리스의 7분조차 너그러워 보이기도 한다. 어쨌든 <11분>은 그렇다, 섹스에 관한 얘기다. 그리고 사랑에 대한 소설이다.

브라질의 어느 작은 도시에서 태어난 아름다운 소녀, 마리아는 누구나 그렇듯 성(性)에 관해 혼란스러운 10대를 거친다. 욕망과 사랑, 그리고 첫경험 사이를 왕복하는 마리아의 감수성은 아름다운 그녀를 가만두지 않는 뭇 남성들의 시선들만큼이나 복잡하다. 원대한 꿈도 없고 별다른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인이 된 마리아는 우연히 스위스 출신의 남자를 만나 유럽으로 떠난다. 그녀가 도착한 스위스는 성매매가 합법적으로 이루어지는 나라. 이곳에서 마리아는 10대 시절 자신의 고민의 원천이었던 성을 직업으로 삼기 시작하고 정면으로 마주한다. 마리아는 한편으론 고향으로 돌아가 농장을 꾸릴 꿈을 꾸기도 하는데, 이런 그녀에게도 사랑이 찾아온다. 화가인 랄프 하르트는 그녀 안에서 빛을 발견하고, 관계가 깊어질수록 두 사람은 서로의 몸을 이해하려 시도한다. 두 사람은 때론 시적으로 때론 동물적으로 정신과 육체의 교감을 나눈다.

 


사실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남성 작가의 소설에서 묘사되는 성(性)은 왠지 과장되고 비현실적일 수 있다. 그것은 대개 남성의 판타지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 섹스의 동등한 두 주체인 남녀의 시각을 고루 반영하지 않는다. 아니 불가능에 가깝다. <11분>을 대하는 나의 시선도 애초에 이랬다. 많은 독자들에게 영감을 심어줬던, 아무리 잘나가는 베스트셀러 작가일지라도 파울로 코엘료는 생물학적으로 남자니까. 게다가 남성이 쓰는 성이야기는 이미 사춘기를 거쳐 지겹도록 봐왔지 않은가. 그 수많은 포르노그라피들. 웬만하면 질릴 때도 됐다.

그러나 작가는 단순히 성애소설을 그리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11분>에서의 섹스는 때로 지나치리만치 사색적이거나 풍부한 철학적 사유로 포장되어 있다. 코엘료는 마치 이 두 사람의 육체의 맞댐이 영혼의 바깥으로만 겉도는 것을 못내 아쉬워하듯 육체의 결합을 정신의 영역으로 확장시킨다. 말하자면 섹스를 통해 두 사람의 영혼을 발견하고 사랑의 의미를 되새김질 하겠다는 의도다. 언뜻 감성적이거나 진부하거나 가끔은 로맨틱하다. 아, 파울로 코엘료는, 어째 이 본능에 충실한 남자라는 동물과 조금 다른 듯 하다.

그 이유는 이렇다. 작가노트를 펼치면 이 소설은 여러 여성들의 도움으로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모두 성을 사고 파는 직업군에 속한 여성들. 파울로 코엘료가 섹스와 사랑, 즉 육체와 정신의 관계를 살펴보기 위해 끌어온 이 배경은 모두 그들의 이야기인 셈이다. 아마도 작가는 이들이 처한 독특한 위치, 즉 생존의 문제, 사회적 문제, 육체의 문제, 애정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인생 전반에 성이라는 소재가 결합되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그들의 삶이 <11분>이라는 소설의 의도를 확실히 해주리라 여겼을 것이다. 섹스라는 소재를 정면으로 끌어들여 끝내 사랑이라는 정신적 가치와의 접점 지점을 찾아내려는 파울로 코엘료의 의도 말이다.

여성의 목소리가 반영되어서인지 소설의 마지막, 작가가 애정과 육체를 둘러싼 그의 사색을 끝맺을 무렵엔 <11분>은 다분히 여성취향의 애정소설 같은 외피를 걸친다. 파울로 코엘료는 섹스라는 소재를 슬쩍 바닥에 깔고 결국 진짜 하고 싶었던 사랑이야기로 돌아간다. 육체와 정신이 하나가 되는. 그래서 아름답긴 하지만 한편으론 이 결말이 <11분>이라는 제목이 가진 도발적 상징성과는 조금 궤를 달리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음, 어쩌면 이것조차 애초부터 남자라는 어리석은 동물에 갇혀있었던 이 한 독자의 오해일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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