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 리스트 / The Bucket List

죽음과 탄생은 하나의 이어진 선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언제나 탄생만을 생각하곤 한다.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고 또 삶을 즐기게 되면서부터 죽음은 항상 멀리할 그 무엇, 또는 결코 다가오지 않을 미래의 일로 치부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음을 상상하는 것은 감당하지 못할 어떤 일을 애써 떠올리는 것과 같다. 물론 죽는다는 것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경험해 볼 수 없는 행위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죽음을 앞둔 두 노인의 소원성취 모험기 <버킷 리스트>가 다소 피상적으로 와 닿는 것은 바로 위와 같은 이유 때문이리라. 만약 내가 짧게는 몇 일, 길게는 고작 몇 달이라는 시한부 인생 선고를 받게 된다면, 나로서는 이들처럼 여유롭게 마지막 하고 싶은 일의 리스트를 작성하는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다. 새파랗게 젊은 나는 그렇다 치고 인생의 황혼기를 지나고 있는 잭 니콜슨과 모건 프리먼은 과연 어떤 생각으로 연기에 임했을까.


좋은 영화의 조건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잘 짜인 시나리오와 적절히 안배된 연출과 편집, 배우들의 인상 깊은 연기 등이 그 조건에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죽음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버킷 리스트>는 그렇게 본다면 그다지 흠 잡을 것이 없어 보이지만, 한편으론 무미건조한 배경 속에 두 노년 배우의 차분한 연기대결만이 유일한 볼거리로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버킷 리스트>가 대단한 어떤 것을 성취하려는 영화는 아니다. 영화는 우리에게 무거운 삶의 철학을 설교하지 않는다. 또한 죽음을 매개로 독특한 세계관을 설파하는 영화도 아니다. 삶이 얼마 남지 않은 두 노인이 생을 마치기 전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들을 작성하면서 설명하려는 것은 단 하나, 가족의 소중함이다. 이들의 ‘버킷 리스트’는 어찌 보면 영화의 목적지로 가는 하나의 출발점이자 미끼로, 영화에서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돈 많은 에드워드(잭 니콜슨)가 평생 엔지니어로 살아온 카터(모건 프리먼)를 데리고 선심 쓰듯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영화의 중반부는 별 의미 없이 지루하게 느껴진다.


아이들을 모두 출가시킨 후 아내와의 관계가 소원해졌음을 느낀 카터는 죽음에 임박해서야 다시금 아내의 소중함을 상기한다. 딸과 사위의 관계를 못마땅하게 생각해 둘 사이를 떨어뜨려놓은 에드워드는 그 일로 한참이나 연락 없이 지내던 딸을 찾아간다. <버킷 리스트>는 두 사람의 사연을 통해 관객에게 더 늦기 전에 곁에 있던 소중한 사람들을 돌아보라고 이야기한다. 우리가 죽을 때 가져가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남겨진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죽기 전의 우리 모습이 아로새겨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새삼 죽음의 의미를 심각하게 반추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한번쯤 생각해보라는 것이 <버킷 리스트>가 두 명배우의 모습을 통해 설명하려는 것일 게다.

그리고 또 하나, 죽음과 관련된 영화라서 그런지 보는 내내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잭 니콜슨과 모건 프리먼의 연기를 제발 오래도록 감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버킷 리스트>같은 범작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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