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rt G-290, 짧은 기타 이야기

Cort G-290

이 녀석과의 인연을 이야기하자면 벌써 지금으로부터 5년여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아니 말이 나온 김에 그 이전으로 더 가보자. 콜트 G-290을 만나기 이전에 접했던 기타들까지 말하기 위해서는 군대시절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때가 비로소 기타를 연습해보고자 마음먹은 시기였기 때문이다.

당시 내가 가지고 있던 기타는 10만원에서 20만원 사이의 삼익의 저가형 모델로 플로이드 로즈 브릿지가 장착되어있는 녀석이었다. 저가의 플로이드 로즈형 브릿지는 사실 튜닝하기가 수월하지 않다. 튜닝이 자주 틀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튜닝 자체도 정확하게 맞추기가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연습은 가능한 기타였으므로 초보자인 나에게 큰 문제는 없었다.

 


정작 문제는 처음 기타를 살 때 종종 그렇듯이 헤비메틀스러운 모양을 찾다가 적잖이 무거운 것을 골라버린 것이다. 어깨에 둘러메고 연주한다면 거의 깁슨의 무게와 비슷한데다가 B.C. Rich의 Warbeast 모델군의 디자인이 변형된 우악스러운 모양새를 하고 있어 나중엔 엄청 촌스럽고 불편하게 느껴진 모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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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Rich Warbeast. 당시 삼익 기타의 바디 모양이 대략 비슷했다. 물론 노골적인 '싼티'와 함께.

이미지출처 www.bcrich.com


군대에서 눈치보지 않고 기타를 친다는 것은 어느 정도 군대밥을 먹고 나서야 가능한 일이다. 물론 놀라운 실력으로 선임병들의 시선을 한눈에 받는다면 모를까, 한창 연습중인 쫄병을 반길 고참들은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처음엔 내 기타를 가져가지 못하고 이후 조촐하게 나마 존재하던(무지 작은 부대였다) 밴드를 기웃거리다가 어느 맘 좋은 고참의 기타를 만져볼 기회가 있었다.

그때 만져본 기타가 콜트의 G시리즈 중 하나였는데 파란색에 예쁜 모델이었다. 소리보다도 외양에 더 혹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이 기타가 나중에 콜트 제품을 구입하게 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 고참은 기타 한대를 더 가지고 있었는데, 노란색 B.C. Rich 모델이었다. 물론 정확한 모델명은 기억하고 있지 않다.

그 후 고참들 비위도 잘 맞추고 훈련도 열심히 뛰는 와중에 눈칫밥을 먹어가며 연습량을 조금씩 늘린 결과 작대기가 세 개가 될 무렵에는 웬만한 리프는 칠 수 있게 되었다. 이때는 꽤 진지하게 연습했는지 그 중에는 지금 칠 수 없게 된 것들도 많다. 어쨌든 그런 과정 속에 부대 내 어느 간부의 기타 줄을 갈아줄 임무(?)를 맡게 되는데, 그때 만난 기타가 Washburn의 N2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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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shburn N2. 지금도 가끔 꿈에 생각나는 기타다. 정말 가볍고 부드러웠다.

이미지출처 www.washburn.com


사실은 지금껏 만져본 기타 중에 가장 맘에 든 녀석은 바로 이 N2다. 물론 내 보잘것없는 기타실력을 감안하여 고가의 기타는 사치라는 전제가 그 결론 아래 깔려있긴 하다. 말하자면 내 실력과 가격대와 취향을 적절히 고려해 보았을 때 가장 알맞은 기타는 워시번의 요녀석이라는 결론이 나온다는 것이다.

50만원대의 가격에 성능도 괜찮은 것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그때까지 메본 기타들에 비해 작고 무게가 가벼웠다. 거기에 개인적으론 왼손 운지의 감촉도 좋았고 연주감도 부드러웠던 기억이 난다. 정말 시간 날 때마다 만져주고 싶은 기타랄까. 물론 저가형 모델인 만큼 아쉬운 점도 있지만 가격을 생각한다면 뭔가를 더 욕심내기 힘든 기타였다. 그 이후 제대할 때까지 이 기타는 우리 내무실을 벗어나지 못했다. 잘 관리해준다는 핑계하에 말이지. 지금도 가끔 생각나는 기타다.

 


그래서 제대 후 기타를 구입할 때 많이도 고민했다. 당시 가격은 N2와 또 한쪽으로 구입을 고려했던 G-290이 서로 비슷했는데, 결국 몇 가지 부분에서 290의 손을 들어주고 말았다. 일단 국산 브랜드이기 때문에 같은 가격 중 로열티 부분이 줄어들고 부품의 성능에 더 많이 투입되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고, 군대 시절 맛보았던 콜트 제품에 대한 호감도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Cort G-290과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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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90 구입시 함께 주는 기타백. 콜트의 로고가 선명히 찍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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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스를 벗은 모습. 당시 매장에 파란색과 빨간색이 있었는데 강렬한 빨강을 선택했다. 지금도 후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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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업은 싱-싱-험 구조에 모두 EMG 제품이다. 강력한 드라이브감은 의심하지 않아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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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업사진 한 장 더. 픽업이 덮개로 보호되어 있다. 윌킨슨 브릿지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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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 부분. 튜너는 Sperzel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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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엔 잘 안보이지만 매 튜너마다 필기체로 Sperzel이라 각인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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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과 바디의 연결부분. 네 개의 볼트가 지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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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 뒤, 이 부분의 덮개를 열면 어지러운 선들과 함께 9V 건전지를 연결하는 공간이 나온다. 꽤 번거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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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t G-290의 또 다른 아쉬운 점 한가지. 스트랩 연결부분이 바디 뒤쪽을 향해 있다. 기타를 메고 서서 연주할 경우, 일반적으로 넥쪽을 향해 설치되어 있는 것에 비해 지판과의 각도가 불편하다. 2008년형은 넥쪽을 향해 있다.


이 290 모델은 내가 구입한 이후로 거의 해마다 사양이 바뀌어 출시되었는데, 올해 나온 모델은 윌킨슨 VS50 II 브릿지 대신 CFA 트레몰로가 장착되어 있다고 하고, 픽업은 잠시 Seymour Duncan으로 갔다가 다시금 EMG로 돌아와있다. 그리고 신모델에서 무엇보다 부러운 것은 몸체 뒷면에 배터리 캐버티가 따로 마련되어 있다는 것. EMG픽업의 성능을 최상으로 발휘하게 위해서는 9V 건전지가 필요한데, 번거로운 것은 둘째치고 배터리를 고정하기가 애매했던 전모델에 비해 적절한 공간이 따로 배치되어 있는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다. 음, 사실 조금은 배가 아프기도 하다.

실은 요즘은 G-290을 자주 만져주지는 못하고 있다. 기타 만지는 시간 자체가 줄어든 것도 사실이지만 그나마도 같은 시간에 얼마 전 새로 얻은 어쿠스틱 기타를 더 만지작거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과연 G-290과 시작할 때 느꼈던 바로 그 애틋하고 설레는 감정이 언젠가 다시금 회복될 수 있을까. 늘 내겐 과분한 기타였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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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조출연, 가와사미 기타 스탠드. G-290을 구입할 때 함께 산 녀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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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른 구입 기준은 없었다. 가장 싼 녀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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펼치면 이렇게. G-290의 요염한(?) 바디모양때문에 기대놓을 시 약간은 언밸런스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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