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제대로 되는게 없어 - 11:14 / PM 11:14 (2003)

헐리웃이 만들어내는 영화들이 매력적인 이유는 비단 큰 제작비를 들여 완성한 현란한 영상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는 언제나 언론에 노출된 큰 영화들만이 헐리웃의 전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헐리웃을 강화하는 것은 주류영화 밑에 잠재된 좋은 아이디어의 작은 영화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큰 영화들이 아이디어 부족으로 허덕이고 있을 때 작은 영화들에서 출발한 능력있는 인력들이 뛰어난 아이디어로 그 빈 공간을 매워줄 수 있기 때문이다. 헐리웃의 최근 경향은 이런 작은 영화들에도 유명한 스타들이 자발적으로 출연하고 있다는 점인데 바로 “11:14”도 그런 영화 중 하나다.


이미 실력있는 배우로 자리잡은 힐러리 스웽크Hilary Swank가 직접 출연도 하고 제작자로도 참여한 영화 “11:14”는 5가지의 이야기를 역추적하는 구성으로 관객에게 궁금증을 유발케 하는 재기 넘치는 영화다. 도로를 따라 크레딧이 움직이는 재미있는 오프닝이 지나면 운전 중 통화하던 등장인물 잭(Henry Thomas)의 차에 갑작스레 사람이 치이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이 시각이 오후 11시 14분. 얼굴이 심하게 뭉게진 피해자는 과연 잭의 차에 치여 사망한 것일까. 이때부터 영화는 관객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한 퍼즐게임을 시작한다. 이 시각(pm 11:14), 이 사건에 연관된 5가지 이야기를 역순으로 차례차례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 둘씩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체 서로 어떤 관계일까.

 


1976년생의 젊은 감독 그렉 맑스Greg Marcks는 저예산 아이디어 영화들이 대부분 그렇듯 스스로 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연출을 맡았다. 각기 다른 이야기들의 앞뒤를 끼워 맞춘 후에야 비로소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되는 구성의 시나리오는 비록 그렉 맑스가 처음 시도한 방법은 아니다. 그러나 영화속에 고어, 코미디, 범죄물의 요소들을 솜씨 좋게 버무려 놓는 그의 재능은 관객으로 하여금 그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다려지게 한다.


이 영화의 또 다른 볼거리는 등장하는 배우들의 면면에 있다. 이제 한국나이로 쉰여섯(52년생)이 되어버린 왕년의 청춘스타 패트릭 스웨이지Patrick Swayze는 이미 예전의 날렵한 몸매를 두둑한 뱃살로 덮어버린지 오래다. 제인 캠피온Jane Campion의 “여인의 초상The Portrai of a Lady"으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던 바바라 허쉬Barbara Hershey가 그의 아내로 등장하고, E.T.와 교감을 나누던 귀여운 꼬마 헨리 토마스가 오프닝에서 교통사고를 저지르는 잭으로 출연한다. 또한 밴을 타고 마을을 질주하는 얼간이(?) 삼인조 중 운전대를 잡고 있는 마크역의 콜린 행크스Colin Hanks는 바로 탐 행크스Tom Hanks의 아들이다. 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여배우 레이첼 리 쿡Rachael Leigh Cook이 패트릭 스웨이지와 바바라 허쉬의 반항스런 딸 셰리로 등장해 귀여우면서도 섹시한 이미지를 맘껏 선보이고 있다.

이런 영화들은 대개 관객들의 호불호(好不好)가 분명하게 갈리는데, 영화에서 심오한 의미를 찾으려는 사람, CG가 등장하지 않으면 영화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 순행(順行)구조의 영화가 아니면 머리에 쥐나는 사람, 피나오는 영화에 알레르기 반응 일으키는 사람, F로 시작하는 욕설에 노이로제 걸린 사람들에게는 분명 이 영화가 끔찍한 경험이 될 것이고, 뭘해도 제대로 안 풀리는 등장인물의 모습에서 쾌감을 찾는 사람, 계속 꼬이는 이야기구조를 선호하는 사람, 영화 보면서 줄거리 추측하기를 즐기는 사람, 레이첼 리 쿡에 미쳐있는 사람들에게는 분명 이 영화가 즐거운 경험을 가져다 줄 것이다. 당연 나는 후자에 속한다.

* 이미지출처 movie.naver.com
www.imd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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