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센트 / The Descent

* 스포일러 포함

절친한 친구들과 계곡 리프팅을 즐기는 사라(쇼나 맥도날드). 이들은 여성임에도 웬만한 남자들도 하기 힘든 레저스포츠만 골라 하는 마니아들이다. 사라는 그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지만 그것이 비극의 바로 전 장면이었음을 알지 못한다. 예상치 못한 사고로 가족을 잃은 사라는 그 상실감으로 인해 1년이 지나서야 예전 친구인 베스(알렉스 레이드), 주노(나탈리 잭슨 멘도자)와 재회한다. 사라의 삶에 다시금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주노가 특별히 마련한 이번 모임의 목적은 미지의 동굴 탐험. 각종 안전도구를 갖춘 다음에야 맘 먹고 들어설 수 있는 비교적 고난도의 코스다. 세 친구를 비롯 도합 6명의 모험가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은 채 그 암흑의 입구에 들어선다. 그러나 순조롭게 진행되는가 싶던 여정은 갑자기 꼬이기 시작한다. 사전에 확인했던 지도와 다른 동굴의 지형과 어디선가 들려오는 의문의 소리. 6명의 친구들은 무엇을 보게 될까.

 


폐쇄된 장소가 불러일으키는 두려움은 공포영화가 관습적으로 다루는 소재 중 하나다. 닐 마샬의 <디센트>는 햇빛조차 비치지 않는 동굴을 이야기의 주 장소로 설정함으로써 등장인물들의 움직임을 효과적으로 제어한다. 로프 없이는 건널 수도 없는 낭떠러지와 한 사람의 몸도 제대로 통과하기 힘든 협소한 통로들. 칠흑의 어둠과 생소한 지형지물은 낯선 장소에 대한 반갑지 않은 감정을 불러낸다. 길 잃은 주인공들은 막연한 희망만으로 이 어둠을 이겨내야 한다. 멤버들간의 잘잘못을 따지며 갈등은 심화되고 제한된 안전도구들은 생명과 직결되어 긴장을 더한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그들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미지의 존재와 맞닥뜨린다. 그것은 인간도 아니고 동물도 아닌 어떤 것. 적막이 공포와 등치를 이루었던 이 곳은 이제 비명과 절규가 메아리쳐 돌아오는 아비규환의 장소가 된다. 모험에 대한 욕망은 생존에 대한 절망으로 그 외형을 바꾼다.

 

 

<디센트>는 어찌 보면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에 대한 작은 경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나 주노로 대표되는 정복욕 강한 캐릭터는 영화 속에서 악역의 역할까지도 도맡는데 결국엔 처참한 죽음으로 그 생을 마감하고 만다. 조금 확대해석하자면 자연에 대한 인간의 과도한 욕망이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와 함께 <디센트>의 매력을 정의 내리는 것은 무엇보다 주인공 사라의 태도변화. 과거의 아픔을 치유 받지 못한 채 이 무모한 모험에 참가한 그녀는 시종일관 영혼의 어딘가가 부서질 듯 연약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다 영화의 후반부에선 엄청난 생존력의 여전사가 되는데, 그 계기는 바로 주노가 그녀에게 심어준 분노. 주인공의 이 절친했던 친구는 인간을 배신하고 자연을 우습게 본다. 영화가 그녀에게 덧씌운 희망 없는 말로가 이해가 가는 순간이다.

영화는 이미 죽은 환상 속 딸을 마주보는 사라의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마치 <지옥의 묵시록>의 윌러드 대위, 혹은 <에이리언> 시리즈의 리플리를 연상케 했던 사라의 강인한 모습은 그녀를 이 주객이 전도된 사냥터의 주인으로 만들어 버린다. <디센트>는 생존자의 미래를 바라보는 어떠한 낙관적인 신호도 보내지 않은 채 마무리를 짓지만 그게 오히려 더욱 설득력 있다. 사고 이후 내내 주인공을 괴롭혔던 상처는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을 만큼 깊은 것이었고, 죽고 싶을 만큼 어두웠던 터널을 건너고 있는 그녀에게 생존에 대한 본능만이 남아 있는 이 동굴은 가장 적절한 최후의 목적지처럼 보인다. 그녀는 그렇게 조용히 어둠의 지배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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