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티지 포인트 / Vantage Point

여기는 스페인의 마요르 광장. 미국을 비롯 전세계 150개국의 각 대표들이 모여 911로 촉발된 대 테러 협약을 체결한다. 그러나 미국의 대 테러전쟁을 바라보는 현실 속 세계인의 시선을 반영하듯 이곳에서도 미국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높다. 행사를 생중계하는 미 방송국 GNN의 프로그램 책임자 렉스(시고니 위버)는 이런 현장의 분위기를 있는 그대로 보도하려는 앵커의 코멘트를 자르고 미국에 반대하는 플래카드를 촬영하는 카메라맨을 나무란다. 한편 백악관 경호실의 반즈(데니스 퀘이드)가 부상으로부터 복귀한다. 1년 전 대통령 암살기도 사건 시 대신 총알을 맞았던 그가 돌아온 사실도 또 하나의 흥미로운 뉴스거리. 긴장된 그의 모습이 보인다. 행사는 계속 진행되고 드디어 미 대통령의 연설 순서가 된다. 그 순간 갑작스런 총성과 함께 연단 위의 대통령은 고꾸라진다.

 


10분이 채 되지 않는 영화의 도입부만 본다면 <밴티지 포인트>는 일종의 흥미진진한 정치 스릴러라고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현실 속 미국의 대 테러정책이 영화에 확실한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다소 민감한 소재를 다루는 것 같았던 영화는 어느 순간 물리적 시간을 되돌리면서 그 본래 의도를 드러낸다. 그것은 한 사건을 등장인물들 각각의 관점으로 보여주는 것. 사건의 중심에 있던 여러 인물들의 시선을 차례로 훑어가는 <밴티지 포인트>는 말하자면 하나의 트릭영화다. 영화는 관객에게 사건의 이면에 담긴 어떤 상징성을 생각해보라 권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 표면을 둘러싼 몰랐던 순간들을 하나 둘 벗겨 보여주면서 단순하고 기계적인 두뇌회전을 요한다. 비슷한 장면들을 서로 공유하며 동일한 시간대를 다룬 각 파트들은 사건의 전말을 암시하는 작은 단서들을 만들어낸다. 영화는 사건의 내막을 알아가는 여정 속에서 관객의 호기심을 건드린다.

 

 

그러나 <밴티지 포인트>가 사건을 구축하는 연결점들을 세밀히 주조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관객은 얼마간의 흥미를 가지고 영화가 하나씩 보여주는 사건의 추이를 지켜보지만 이내 큰 관련 없어 보이는 사항들을 의도적으로 끼워 맞추는 영화의 태도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대략 영화가 미국인 여행객인 하워드(포레스트 휘태커)의 관점으로 서술될 무렵엔 초반에 잘 간직했던 긴장감이 스르르 풀려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런 영화들이 대개 그렇듯 <밴티지 포인트>도 그 사건의 전말을 드러낼 즈음 허탈한 감상을 남긴다.

영화가 현실을 아우르는 그럴듯한 은유 없이 그저 관객의 뒤통수를 간질일 요량으로 달려온 만큼 어느 정도의 실망은 알아서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 이 영화가 역시나 헐리웃 영화였음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엔딩을 바라보자면 영화의 앞부분에서 가졌던 일말의 호감마저 저만치 멀어져 간다. 일개 국가의 수장을 일당백의 터미네이터로 묘사했던 <에어포스원>이나 <인디펜던스 데이>만큼은 아니지만 <밴티지 포인트>가 자국의 넘버원을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는 덕장으로 그리는 대목에선 거부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하긴 내가 조금 민감한 것일 수도 있겠다. 영화 속에선 현실에선 불가능한 것들을 그럴듯하게 실현할 수 있지 않은가. 굳이 현실의 판박이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데니스 퀘이드, 윌리엄 허트, 시고니 위버, 포레스트 휘태커 등의 베테랑 배우들을 모두 모셔다 놓고 영화적 긴장감과 현실의 흥미로운 반영 모두를 이룩하지 못한 사실마저 어떻게 여겨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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