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아나 존스 4 :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 / Indiana Jones And The Kingdom Of The Crystal Skull

영화는 종종 기분 좋은 추억이 되기도 한다. 좋은 추억은 영원히 마음 속에 남아 있을 때 더 빛을 발한다. 그것이 비록 미화되거나 과장되어 있더라도 말이다. 중절모와 채찍으로 각인되어 있는 존스 박사에 대한 기억도 마찬가지다. 어린 시절 슈퍼맨, 루크 스카이워커와 함께 언제나 내 마음 속 영웅자리를 꿰차고 있었던 그다. 얼뜬 표정과 실없는 농을 흘리면서도 결국 위기를 극복해내고야 하는 그 능력은 결코 보통사람의 것이라고 볼 수 없지만, 존 윌리엄스의 엉덩이를 근질거리게 만드는 메인테마와 함께 이 노련한 고고학자가 등장하면 목숨을 위협할 정도로 정신 없는 모험 속에서도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런 그가 돌아왔다. 그것도 자신을 탄생시킨 바로 그 사람들과 함께. 조지 루카스와 스티븐 스필버그는 굳이 새로이 만들 필요 없을 정도로 잘 끝맺음 했던 시리즈를 스크린으로 불러내기 위해 다시 손을 잡았다. 말하기를 ‘팬 서비스’ 차원이란다. 어떻든 무척 반갑다. 존스 박사도, 이 두 거물 감독들도.

 

 

<인디아나 존스 4: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이하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은 별다른 사전설명 없이 모험의 시작점으로 직진한다. 50년대의 미국. 마침 공산주의에 대한 혐오와 공포가 극에 달했던 시대다. 이 강대국들간의 이념전쟁의 영향은 존스 박사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 지인과의 관계 때문에 연방정부의 타겟이 된 인디아나 존스는 고고학자로서 학교에서의 위치도 안정적이지 않다. 전작들에서 주로 나치들과 추격전을 벌였던 인디는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에서 구소련의 KGB를 상대로 한다. 인디는 어느 날 찾아온 청년 머트(샤이아 라보프)에게서 크리스탈 해골을 찾아나선 고고학자 옥슬리 교수(존 허트)가 위험해 처해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인디는 옥슬리가 찾아낸 해골을 KGB 또한 찾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머트와 함께 그를 찾으러 떠난다.

아찔한 스릴이 연이어 펼쳐지는 존스 교수의 모험엔 누가 뭐래도 여유와 웃음이 있다. 폐쇄공포증을 일으킬 만큼 어두운 동굴 안에 갇혀있어도 언젠가 햇빛은 들고야 말리라는 그 천진한 낙관론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이다. 곡예에 가까운 위기탈출 능력과 학자라는 직업이 무색할 격투능력이 거짓말 같아도 얼마든지 속아줄 수 있었던 것은 보는 이를 유쾌하게 만드는 그의 이런 속성 때문이다. 상업영화에 있어서라면 확실한 보증수표라 할 수 있는 올스타 제작진과 함께 돌아온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이 전작들을 뛰어넘는 어떤 대단한 영화사적 성취를 이룰 필요는 없지 않을까. 재미있는 영화의 본보기와 다름 없었던 이 모험영화가 더도 덜도 말고 기존의 삼부작만큼의 흥겨움을 전해주기만 하면 관객의 만족감은 채워질 수 있으니까. 그리고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은 정확히 그 기준점을 충족시킨다.

 

 

물론 세월의 흐름만큼 커진 기대치에 따라 이번 작품에 대한 호부가 나뉠 수도 있다. 혹자는 전편들을 뛰어넘지 못하는 스토리텔링에 만족하지 못할 수 있고, 다른 이는 나이든 존스 박사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시간의 무상함을 영화에 대한 실망감과 등치시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이듦을 소진된 신체능력만큼의 연륜과 맞바꾼 인디는 날라리 고고학의 세계 속에서 여전히 영웅대접을 받는다. 젊은 시절을 덧없이 회상하면서도 언제 어디서든 악당들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올 수 있고, 그들의 회유에도 단단한 자존심으로 버텨내는 인디아나 존스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 그 사람이 맞다. 사실 예고편만 봐도 그 정체가 누구일지 금방 알아챌 수 있는 머트에게 왕년에 날아다니던 자신의 흔적을 조금씩 보여주며, 동시에 나이든 자의 현명함을 드러내는 인디의 모습은 어쩌면 오래 기다린 팬들에게 이번 작품이 주는 보너스일 것이다. 그는 한결같이 여유롭고 능글맞은 데다가, 굼뜬 척하지만 여전히 날쌔고, 여기에 연장자의 미덕까지 갖춘 채 돌아왔다.

 

 

솔직히 말하자면 어린 시절 마음 속 영웅들의 귀환은 그 어떤 부정적 시각보다 반가움이 먼저다. 리처드 도너의 계승임을 밝히며 빨간 망토를 스크린에 복귀시켰던 브라이언 싱어의 <슈퍼맨 리터즈>나 스스로 창조해낸 전설의 세계를 멋지게 마무리한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 프리퀄을 커진 머리통과 째진 눈으로 바라볼 수 없는 것은 그들이 내 유년의 기억을 잠식한 그 영향력 때문이다. 몸은 커졌어도 추억만은 남아 있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을 여전히 신나는 모험활극, 아니면 전편들과 차별성이 없는 제자리걸음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에게 있어선 추억을 훼손하지 않는 멋진 복귀작이라는 표현이 가장 알맞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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