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 世界の中心で, 愛をさけぶ

원래 원작을 뛰어넘는 재창조물이란 보기 드문 것이다. 물론 예외가 있을 수 있겠지만 각색된 결과물들은 대개 원작에 매료된 팬들로부터 원래 작품이 가진 매력의 일부분만을 취하거나 혹은 그 핵심을 잘못 이해했다는 이유로 불평을 듣기 일쑤이다. 이런 현상은 영화가 영화로 재탄생 될 때보다 텍스트가 영상으로 변환될 때 더 정확하게 적용된다. 아마도 소설에 대해 열린 상상력을 가질 수 있는 독자와 주어진 영상에 직접적으로 반응하는 영화관객의 위치가 사뭇 다르기 때문이리라.

카타야마 교이치의 원작소설
을 스크린으로 옮긴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는 각색이 원전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통념을 재확인시킨다. 원작 자체가 일찌감치 틴에이저 신파임을 감안할 때 그 정서를 훼손하지 않고 스크린 속에 어떻게 구현해내느냐는 고민이 영화에 묻어나긴 한다. 원작소설에 없던 인물을 추가한 것이나 캐릭터간 관계의 밀도를 높이려 인물을 각색하는 행위는 모두 그런 고민의 결과였을 것이다. 영화에서는 원작에는 없던 작은 설정들을 집어넣어 도입부와 엔딩의 연관성을 부각시키려는 의도 또한 엿보인다. 모두 주어진 러닝타임의 한계 속에서 원작이 가진 매력을 잃지 않으려는 시도들이다.


그러나 그 비극적인 결말에도 불구하고 사쿠와 아키의 모습을 꽤 담담한 묘사로 담아냈던 카타야마 교이치의 어투를 영상으로 그대로 옮기기란 아마도 힘들었을 것이다. 이것을 눈물 콧물 쏙 빼놓는 배우들의 연기와 슬프디 슬픈 배경음악으로 포장할 것이냐, 아니면 과감한 생략과 절제된 감정선으로 관객의 허점을 찔러 눈물샘을 자극할 것이냐를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제작진의 선택에 달려있다. 근데 이게 참 어렵다. 본래 신파란 절절함을 강조할수록 도리어 유치해지기 십상이니까.

 


영화버전의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는 보다 쉬운 방법인 전자를 택한다. 관객은 주인공들의 꽉 다문 입술을 통해 반어법의 슬픔을 느끼기 보다는 흐느끼는 인물들의 모습을 더 자주 보게 된다. 여주인공 아키(나가사와 마사미)의 병이 밝혀지는 타이밍 또한 약간 빠른 듯해서 나머지 러닝타임을 슬픔에 둘러싸인 한 쌍의 틴에이저를 감상하는데 온전히 소비해야 한다. 이것이 아쉬운 이유는 이렇다. 사쿠(모리야마 미라이)가 아키에게 가진 감정이 관객에게 충분히 전달되기 위해선 이들의 추억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더욱 소중하게 다가와야 하는데 영화상에선 그럴만한 충분한 시간을 벌지 못하기 때문이다.


원작소설의 장점은 청춘의 풋풋함이 추억으로 변환되는 과정과, 또 그것이 채 피지 못했을 때 느껴질 절망을 적절히 교배한 것이었다. 여기에 남성작가에 의해 쓰인 원작은 남성독자(관객)에게도 충분히 어필할 만한 외양을 갖추고 있다. 귀여우면서도 당돌하고, 지적이면서도 신비로운 아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사춘기소년의 꿈속에서나 나타날 만한 소녀다. 그에 반해 별다른 특징이 보이지 않는 사쿠는 너무나 평범한 소년. 소년의 입장에서 추억 속의 여신과도 같은 그녀와의 사랑이 하나의 판타지가 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환상이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형상화되면 그 신비감은 반감된다. 각자의 기억 속에 미화되어 아련하게 남았던 아키의 모습이 스크린을 통해 드러나는 것 자체가 원작을 읽었던 이들에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을 수도 있다. 상상을 뛰어넘는 현실은 있을 수 없으니까. 때론 추억은 추억으로, 꿈은 꿈으로 남겨두는 것이 더 아름다울 테니까.



* 그렇다고 아키 역의 나가사와 마사미가 미스캐스팅이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녀는 충분히 매력적이고 아름다웠다. 특히 사쿠를 향해 지어주는 그 미소. 다만 마지막 문단은 풍부한 상상을 동반하는 소설읽기와 그렇지 못한 영화감상의 차이를 말하고자 했을 뿐.

* 이 영화가 원작소설에 비해 전해주는 감동이 덜함에도 불구하고 히라이 켄(平井堅)의 엔딩테마(‘瞳をとじて’)만큼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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