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모범생 영웅의 귀환 - Superman Returns / 수퍼맨 리턴즈 (2006)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오프닝

비디오도 없던 시절, 명절마다 TV에서 방영해주는 두 편의 영화는 내 유년시절을 고스란히 지배했다. 이 두 편의 영화모두 유명한 시리즈물이었는데 첫 번째는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 두 번째 영화는 리처드 도너의 “수퍼맨”이었다.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광선검은 당시 모든 아이들의 선망의 아이템이었으나 현실에서 재현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야광물질로 만든 조악한 장난감이 있었지만 영화에서 보기와는 너무 딴판인 그 몰골(?) 때문에 그다지 큰 관심은 끌지 못했던 것이다. 반면에 수퍼맨이 두르고 나온 빨간 망토는 집안을 조금만 뒤져보면 나오는 붉은 보자기로 웬만큼 재현이 가능했다. 보자기를 두르고 마치 수퍼맨이 된 양 집안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초라한 마지막 작품이었던 4편 이후로 20년만에 부활한 수퍼맨, 유년시절의 기억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나에게, 돌아온 수퍼맨을 객관적으로 감상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수퍼맨 리턴즈Superman Returns"가 개봉되던 날 바로 극장을 찾은 나는 예전 방식 그대로 재현된 오프닝 크레딧에, 존 윌리암스John Williams가 창조한 메인테마를 들으며 거의 눈물을 흘릴 뻔 했다. 또한 엑스맨과 스파이더맨을 비롯한 마블코믹스의 수퍼히어로들이 극장가를 점령해버린 지금 DC코믹스의 최후의 보루 수퍼맨이 돌아왔다는 점으로도 감동적인 귀환인 셈이었다.


 “수퍼맨 돌아오다Superman Returns"


수퍼맨을 되살리고자 자기자식이나 다름없는 엑스맨의 마지막을 포기한 브라이언 싱어Bryan Singer는 “수퍼맨 리턴즈”를 통해 수퍼맨의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려는 듯 보인다. 수퍼맨의 영원한 동반자(?)나 다름없는 렉스 루터를 때 맞춰 등장시켜 오로지 둘만의 대결을 만들어낸 것도 그런 목적의 일환이었을 것이다. 주인공 수퍼히어로들에 못지 않는 초인적 힘을 가진 악역들이 수두룩한 이 시대에 단지 영리하기만 한 인간, 렉스 루터가 홀로 수퍼맨을 상대한다는 것은 왠지 시대착오적이다. 그러나 영화 “수퍼맨”의 출발점이 렉스 루터와의 일대일 대결이었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브라이언 싱어의 설정이 원작과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도 또 다른 오리지널의 시작을 알리기에 최적의 선택이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건물을 오르고 염력을 사용할 줄 아는 악당들을 배제하는 대신 싱어는 수퍼맨의 로맨스를 부각시킨다. “수퍼맨 리턴즈”는 긴 이별기간을 겪은 연인들의 이야기다. 더구나 클락과 로이스, 그리고 수퍼맨으로 이루어진 기묘한 삼각관계는 여전히 흥미롭다. 브라이언 싱어의 전략은, 상대적으로 빈약한 악역으로 만들어진 플롯의 구멍을 로이스의 사연으로 메꾸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수퍼히어로 영화에서 능력을 과시하는 영웅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다. 클락, 혹은 수퍼맨과 로이스, 여기에 그녀의 약혼자 리처드까지 얽힌 복잡한 애정전선을 직접 확인하는 것만으로 만족하며 극장을 나설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싱어는 여기에 필살의 설정을 집어넣었는데 그것이 바로 로이스가 낳은 수퍼맨의 아들이다! 눈치 빠른 관객이라면 로이스의 아이가 등장하면서부터 짐작을 했겠으나, 렉스 루터가 내미는 크립토나이트에 아이가 겁먹는 장면은 불거진 의혹을 사실로 확인시키는 결정적 장면이다. 이때 쯤 아마 싱어(어쩌면 함께 스토리를 구상한 마이클 도허티Michael Dougherty나 댄 해리스Dan Harris중 한명이)는 ‘볼거리가 없어도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하며 관객 뒤에서 미소 짓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음편으로 예정된 “수퍼맨: 강철의 사나이Superman: The Man of Steel"가 더 기대되는 이유는 비단 수퍼맨의 아들 때문만은 아니다. 이제 렉스 루터는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거의 수퍼맨과 맞먹는 능력의 소유자와 손을 맞잡을 것이 분명하고,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돌아온 ”수퍼맨“은 2000년대의 블록버스터다운 위용을 갖추게 될 것이다.


 엔딩


"수퍼맨 리턴즈“의 엔딩은 오프닝처럼 원작과 흡사하게 꾸며져 있다. 푸른 지구를 배경으로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늠름하게 비행하는 수퍼맨의 모습은 어린시절의 추억을 되살린다. 그 위를 흐르는 수퍼맨의 메인테마를 듣고 있자니 극장에서 쉽사리 자리를 뜨는 것은 불가능해보였다. 더욱 감동적인 것은 엔딩 크레딧에 찍혀있는 크리스토퍼 리브와 그의 부인 데이나 리브Dana Reeve에 대한 헌사였는데, 불멸의 영웅인 수퍼맨의 동음이의어와 다름없는 그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은 영화와 현실 사이의 불행한 괴리였다.


 캐스팅

“수퍼맨 리턴즈”의 캐스팅에 있어서 렉스 루터의 비중을 크게 한 것은 싱어의 의도였을 것이다. 극중에서 상대적으로 약한 렉스 루터의 빈 곳을 배우의 카리스마로 채워 넣자는 취지였을 텐데, 그런 의미에서 케빈 스페이시Kevin Spacey는 적절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그에게서는, 악역이라기보다는 익살꾼에 가까웠던 원작의 진 해크먼Gene Hackman보다는 더 영리하고 치밀한 렉스 루터가 엿보인다. 고정된 이미지에 갇힐 위험을 감수하고 수퍼맨을 연기한 브랜든 라우스Brandon Routh는 그 몸짓에서부터 말투까지 원작의 수퍼맨, 크리스토퍼 리브Christopher Reeve를 쏙 빼닮은 모습이다. 또한 과거 덜렁대는 말괄량이 이미지가 강했던 마곳 키더Margot Kidder와는 달리 지적인 커리어 우먼의 측면이 강조된 케이트 보즈워스Kate Bosworth의 로이스 레인은 현대의 이상적인 여성상에 맞게 변화되었다.

 모범생 영웅의 귀환

수퍼맨은 성공적으로 귀환했다. 평소엔 생활고에 시달리며 군중의 환호에 우쭐대는 스파이더맨이나, 부모의 살해장면으로 비롯된 트라우마를 벗어나지 못하는 배트맨, 사회적 소수자의 애환을 간직한 엑스맨들은 결코 넘보지 못할 완벽한 초인의 세계가 돌아온 것이다. 개인적 취향으로는 보다 고민하는 영웅들의 모습에서 더 흥미를 느끼는 편이지만 어린시절의 영웅, 수퍼맨이 돌아왔다는 것만으로도 그가 완전무결한 모범생이든 예수의 재림이든 상관없는 것이다. 이제 장은 펼쳐졌으니 모두 다같이 사이좋게 지구를 구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것도 아주 멋지게!


* 이미지출처 www.imd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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