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 스포일러 포함

소년은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와 만난다. 성숙한 여인의 육체를 경험하고 그녀에게 책을 읽어주고 대화를 나누다 집에 돌아와 온통 그녀의 모습으로 가득한 꿈을 꾼다. 그것은 불과 15년을 살아왔을 뿐인 그에게 마치 거대한 우주의 시작이나 다름 없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이 낯선 감정의 정체는 뭘까. 20년의 나이 차이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것을 사랑이라 부를 수 있다면 소년은 그녀를 사랑했다.

<더 리더>의 처음 부분, 그러니까 미하엘과 한나가 서로 알게 된 후 사랑을 나누고 책을 읽고 하는 만남을 큰 장애물 없이 계속해 나갈 때, 나는 이 이야기가 금기를 깨는 사랑을 다루고 있는 줄로만 알았다. 어머니와 아들처럼 보이는 두 사람이 여행을 하다 머무는 숙소에서 그들 스스로를 모자관계라고 위장할 때에도 역시 그랬다. 주변에 들켜선 안 되는, 사랑에 빠진 당사자들만이 이해할 불가사의한 화학작용. 나는 이 아슬아슬하고도 기묘한 만남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 지에만 관심을 가졌다. 그것의 결말이 희극보다는 비극에 가까우리라는 것쯤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러다 한나가 사라진다. 그리고 소설은 이때부터 나이차를 극복한 어느 사랑 이야기에서 어두운 역사가 집단과 개인에게 지우는 죄의식과,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용서와 이해, 그리고 특정 세대간에 존재하는 특수한 갈등을 다루는 매우 복잡한 이야기로 나아간다. 미하엘과 한나 사이에 이 모든 것이 끼어들었을 때, 아니 그 관계 밑에 본래 잠재하고 있던 것들이 이렇게 자신을 드러낼 때, 둘의 사랑도 책을 덮으면 쉬이 잊혀질 것에서 두고두고 가슴에 남을 슬픔이 되고 만다.

어디선가 두 사람의 나이차가 정확히 부모와 자식간의 그것과 일치함에 주목하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러니까 작가가 설정한 주인공들의 세대 차는 이것이 단지 보편적이지 않은 사랑이야기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소설 밑에 깔린 이야기, 바로 독일 전쟁 세대와 전후 세대의 풀리지 않는 감정적 고리를 함축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설정된 것이리라. 한나는 정확히 미하엘의 부모 세대. 그러나 부모와의 혈연을 평생 끊을 수 없는 것처럼 그녀를 사랑했던 소년의 마음도 쉽게 외면하기 어렵다. 유태인 수용소의 교도관이었던 한나의 행동이 그녀에게 죄값을 치르게만 하면 어렵사리나마 용서될 수 있는 걸까. 뚫린 법망을 이용해 공평한 단죄를 피한 다른 범죄자들이나 그 살육의 현장을 인지하고도 묵인한 전쟁 당시의 다른 독일시민들은 그에 따른 죄의식을 가지지 않아도 되는 걸까. 두 사람의 뜻하지 않은 재회가 시작되면 독자는 이런 질문들을 떠올리게 된다.

굳이 그런 질문의 해답을 찾으려 할 필요는 없겠지만, 몇 가지 상념들은 생겨난다. 온 사회가 연대해 책임을 물어야 할 그 사건의 중심에 단지 자신이 문맹이라는 것을 들키기 부끄러워했던 한 여인만이 서있다는 사실이 쓸쓸하게 느껴졌다. 물론 그녀가 처벌의 화살을 피할 수 없으리란 것, 또 죽었거나 생존한 피해자들로부터의 궁극적인 이해나 용서를 얻기란 절대 불가능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미하엘이 교도소에 있는 한나에게 책을 읽어 녹음한 테잎을 보내주었지만 그녀가 어렵게 써보낸 편지에 답장을 해주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이런 갈등어린 감정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리라. 그녀의 행동이 이성적으론 용서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미하엘은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일까. 범죄자를 사랑한 소년. 그는 그 사실을 영원히 떨쳐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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