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애견인을 위한 동화 - Eight Below / 에이트 빌로우 (2006)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여기 개에 얽힌 두 이야기가 있다.

하나는 이렇다. 1957년 남극에 파견된 11명의 일본 탐험대와 25마리의 썰매개는 예상치 못한 악천후로 남극탐사작업을 그만두고 기지를 철수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 과정에서 15마리의 썰매개가 돌아가지 못하고 남극에 남겨지는데, 그로부터 2년 후인 59년 1월, 탐사작업을 재개하기위해 남극에 돌아온 일본의 탐험대는 15마리의 개중 2마리가 생존해 있는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된다.


또 하나의 이야기가 여기 있다. 미국과학재단(NSF)의 남극탐사기지에 도착한 지질학자 맥클라렌(McClaren: Bruce Greenwood)은 화성의 유성을 찾기 위해 탐사가이드 셰퍼드(Shepard: Paul Walker)와 여덟 마리 썰매개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결국 그들은 원하는 유성의 파편을 찾고 어렵사리 기지로 돌아오지만 기상상태가 악화되어 모두 그곳을 떠나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유일한 운송수단인 비행기에는 인간들을 태울 여유밖에 없다. 셰퍼드의 가족과도 같은 여덟 마리의 개들은 불가피하게 혹독한 눈보라가 기다리고 있는 기지에 묶여진 채로 남는다. 이후 셰퍼드는 개들을 찾기 위해 남극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지만 그것조차 여의치 않다. 남겨진 여덞 마리의 개들은 살아남기 위해 묶어둔 벨트를 끊는데 성공하지만...



전자의 이야기는 실제 있었던 사건이고, 후자는 그 사건으로부터 파생된 영화 “Eight Below"의 도입부다. 남극의 설원을 배경으로 타이틀 “Eight Below"가 뜨면 ‘실화로부터 영감받은(inspired by a true story)'이라는 문구가 슬며시 나타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건 일종의 페이크(fake)다. "에이트 빌로우”는 앞의 실화를 바탕으로 1983년에 만들어진 일본영화 ”남극이야기(南極物語/Antarctica)"를 원전(原典)으로 삼았는데, 말하자면 남극에서 실제 있었던 이야기는 헐리웃에 도착할 때까지 2번의 각색과정을 거쳐 온 셈이다. 사실 알려진 실화와 “에이트 빌로우”와의 사이에는 ’극한의 장소에서 개들이 살아남았다‘는 모티브 외에 어떠한 연결고리도 없다. 게다가 눈보라가 몰아치는 남극에서 2년 가까이 고립됐던 개들이 어떤 생활을 했는지 그 누가 알겠는가.


그러나 시작부터 낚싯대에 ‘실화’라는 미끼를 달고 관객들에게 드 리우며 현혹하지 않아도 영화 “에이트 빌로우”는 꽤 호감 가는 영화다. 영화의 주된 배경이 되는 남극의 모습은 거대한 스크린으로 감상한다면 관객들에게 대자연의 위대함을 충분히 느끼게 해줄 만큼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인간들과 개들 간의 끈끈한 교감을 형성하기 위해 영화적으로 만들어진 초반 에피소드도 기분 좋은 긴장감을 동반하고 있으며, 이후 기지에 남겨진 개들을 찾기 위해 애쓰는 등장인물들의 모습도 영화적으로 과하지 않게 표현되었다.

“얼라이브Alive”(1993)와 “콩고Congo"(1995) 등의 영화로 극한의 자연에 놓인 인물들의 표정을 담아내는데 일가견이 있는 감독 프랭크 마셜Frank Marshall은 ”에이트 빌로우“를 잘 연출된 좋은 가족영화로 완성했다. 이 영화의 대상 관객층은 크게 두 갈래로 볼 수 있는데, 첫째는 아이들을 동반한 부모들, 둘째는 개를 가족처럼 생각하는 애견인들이다. 아이들에게 동물이 있는 자연의 풍경을 영화로 보여주고 싶었던 부모들은 ”에이트 빌로우“를 기꺼이 선택할 것이고, 개 없이는 못 사는 애견인들은 영화의 마지막 개들과 사람과의 재회장면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릴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이 영화는 분명 만족스러운 감상을 전해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이가 있지도 않고, 개를 좋아하긴 하지만 키우진 않는 입장이어서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 중 한 가지가 이 영화와 실제사건과는 유사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초반 영화가 나에게 던진 ‘true story'라는 미끼를 내가 의심 없이 덥석 물어버렸기에 비롯된 일종의 배신감 같은 감정이었다. 자, 이건 순진한 관객인 나를 탓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영화는 어쨌든 'inspired by'라는 애매모호한 언급을 통해 이미 빠져나갈 출구를 마련해 놓은 셈이니까.), 영화에서 개들의 행동이 너무 의인화되어 오히려 별다른 과장 없이 진행되는 인간들의 에피소드와 잘 어울리지 않았다는 점이 또 다른 아쉬운 부분이었다. 특히 개들이 서로 먹이를 양보하는 장면이라든가, 상처 입은 동료개를 보살펴주는 장면, 고래시체를 식량으로 차지하기 위해 협심하여 바다표범을 공격하는 장면들은 너무 인위적이어서 영화에 제대로 몰입이 안 되는 부작용을 낳았다. 8마리 중 6마리나 살아남는다는 결말도 어떻게 보면 꽤 작위적인 결말인데, 차라리 혹독한 남극의 기후조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어 개들의 여정을 더 힘겹게 묘사했다면 영화의 극적 완성도를 좀더 높일 수 있지 않았을까.

“에이트 빌로우”는 결국 디즈니 영화다운 감미로운(?)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이 영화는 동물들에게 영화적으로 지나치게 혹독한 시련을 던져주지 않으면서, 인간이 느낄 적당한 감동을 동반하는 타협점을 찾는데 어느 정도 성공한 듯 보인다. 개인적으론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가족과 함께, 혹은 사랑하는 자신의 반려동물을 생각하며 이 영화를 보게 된다면, 그건 꽤 괜찮은 선택으로 기억될 것이다.


* 이미지출처 www.imdb.com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