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승 + 진중권 크로스 (정재승, 진중권)


과학과 미학 양 분야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큰 인지도를 얻고 있는 두 저자, 정재승과 진중권이 "크로스!"를 외쳤다. 혹시 영화 <트랜스포머>를 보고 '삘' 받아 서로의 몸을 해체, 결합 해보려는 시도가 아니냐고? 그랬다면 더욱 흥미로웠겠지만 아쉽게도 <정재승 + 진중권 크로스>(이하<크로스>)는 이들이 의기투합해 쓴 책의 제목일 뿐이다. 제목만 듣고 잠시나마 물리법칙의 혁신과 생명공학의 진보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내가 어리석었다.

그러나 이 부러운 두 두뇌의 결합만은 얼마간 이뤄진 셈이다. <크로스>는 시대를 대표하는 스물 한 개의 아이콘을 바라보는 두 저자의 시각을 번갈아 기록하고 있다. 이 기호들은 주로 각 저자의 주 활동무대, 즉 과학과 미학이라는 배경 안에서 분류돼 서술되고 있지만 때론 서로의 영역이 교차되기도 한다("크로스!").


요즘은 누구나 '스타벅스'에 앉아 '애플'이 만든 아이폰으로 '구글'링을 한다. 별다른 약속이 없는 주말이면 '유재석'이 토요일의 문을 열고 '강호동'이 일요일을 마무리하는 버라이어티 쇼를 본다. 신나게 웃고 나면 어쩐지 청와대 공보실의 확성기 같은 '9시 뉴스'가 이어진다. 헤드라인 뉴스를 대충 살핀 후 '헬로 키티' 무늬가 새겨진 문구와 '레고' 조각이 어지럽게 흩어진 아이들 방으로 들어가 잘 자라는 인사를 하려는데, 졸려 하기는커녕 온라인 게임 속 '세컨드 라이프'에 빠져있는 녀석들과 언쟁을 벌여야 한다. 마치 현재 한국에 살고 있는 불특정 아무개 씨의 삶을 관찰하듯 <크로스>에서 글의 소재가 되는 아이콘들은 모두 현재진행형이다.



<크로스>는 지금 우리를 지배하는 하나의 거대담론을 깊게 파고 들어가는 방식이 아니라 이처럼 개별적인 파편으로 이루어진 주변에 들러붙어 현재를 이야기한다. 흥미로운 점은 그 안에 담긴 작은 의미들이 모여 그 기저의 큰 흐름을 보여준다는 것.

이를테면 '스타벅스' 커피와 '애플' 아이폰이 그것의 맛이나 기능과는 별개로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 구매자를 특정한 사회적 위치에 데려다 놓는다는 언급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 테크놀로지와 예술의 경계 혹은 음악과 미술의 접점이 희미해 지는 지점에 서있는 '제프리 쇼'와 '파울 클레'(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이름들!)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예술의 끝없는 자기 확장의지를 읽을 수 있으며, 오래 사랑 받는 제품과 디자인이면서 그 자체로 하나의 커다란 문화가 되어버린 '헬로 키티'와 '레고'의 변천사에서 시대와 대중의 취향변화에 따른 상업적 수요가 보이는 식이다.

결국 책의 제목인 '크로스'는 두 저자의 지적 결합 자체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각각의 소재들이 우리 삶에 뻗고 있는 직선들이 서로 만나는 지점을 뜻하는 듯도 하다.

각 챕터의 글이 짧고 명료해 빠른 속도로 읽어나갈 수 있다. 특히 소재에 따라 주목하는 단락만 골라 읽어나가도 좋다. 물론 얼마간의 조정과정을 거쳤겠지만 스타 지식인인 두 저자의 방대한 관심사를 엿보는 것도 이 책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즐거움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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